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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팬데믹 시대 예술은 왜 이리 굼뜬가

등록 2020-06-30 05:00수정 2020-06-30 08:19

이용백 작가의 토탈미술관 개인전 ‘브레이킹 아트’
신속 반응하는 새로운 예술을 노동하며 상상하다
토탈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나온 이용백 작가의 신작 <검은 새 1번 깃털>. 청동판을 열로 구부려 만든 어두운 빛깔의 깃털들을 은빛 스테인리스 뼈대에 붙여 길이 7m가 넘는 거대한 깃털대 모양을 만들어 내걸었다. 작가는 이 깃털대를 바로 아래 유리판 위로 내리쳐 깨뜨린 뒤 다시 끌어올려 내걸었다. 현실의 시간만 비추는 유리판이 산산이 깨어진 전시 현장과 깃털의 모습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일상의 시간을 성찰하게 한다.
토탈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나온 이용백 작가의 신작 <검은 새 1번 깃털>. 청동판을 열로 구부려 만든 어두운 빛깔의 깃털들을 은빛 스테인리스 뼈대에 붙여 길이 7m가 넘는 거대한 깃털대 모양을 만들어 내걸었다. 작가는 이 깃털대를 바로 아래 유리판 위로 내리쳐 깨뜨린 뒤 다시 끌어올려 내걸었다. 현실의 시간만 비추는 유리판이 산산이 깨어진 전시 현장과 깃털의 모습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일상의 시간을 성찰하게 한다.

급박한 시국에 미술은 왜 이리도 굼뜰까? 속보 뉴스처럼 신속하게 시대적 변화에 대응할 수는 없는 걸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면서 현장의 미술 작가들 상당수는 답답한 심정으로 이런 물음과 소망을 털어내곤 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한 비대면 온라인 전시가 활성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생각과 메시지를 날것 그대로 빠르게 표출할 수 있는 마당 혹은 창구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지만 현대미술의 주역인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들은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20세기 말부터 시장과 자본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서 의전을 따지며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공식화하고, 컬렉터를 의식한 전시 세부의 공예적인 모양새 다듬기에 치중하는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왔기 때문이다.

201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나섰던 미디어 작가 이용백(54)씨는 이런 의문을 창작과 전시 행위를 통해 풀어서 보여주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토탈미술관에 차려놓은 그의 개인전 ‘브레이킹 아트’는 뉴스 속보처럼 신속하게 반응하는 날것의 예술을 표방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미술관 쪽은 이 전시가 올 초 그가 자산문화재단의 1회 자산미술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해 열리는 행사임을 밝혔지만, 실제로 작가는 미술관과 협의해 의도적으로 준비 기간을 촉박하게 잡았다. 4월17일 전시를 결정한 뒤 불과 한달여가 지난 5월20일 개막하는 것으로 일정을 단축해놓고 그 기간 중 전시 세부를 다듬기 위한 일체의 작업을 없애고 오직 팬데믹과 갈등의 시대 자기가 고민했던 화두들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내뱉는 데 집중했다. 지상 전시장 들머리에 나온, 사람들의 식사 장면 등을 그린 2점의 로봇팔 페인팅을 비롯해 알루미늄판 위에 남북한 휴전선 경계 부분만 뚫은 조형물이나 청동으로 제작한 육중한 깃털을 유리판 위에 놓은 대형 설치작품, 여러 벌의 작업복을 일일이 빨래통에서 빠는 퍼포먼스 영상 등은 대부분 한달여의 준비 기간 동안 그가 착상하는 대로 바로 착수해서 작업한 결과물들이다.

바닥 설치작품인 &lt;브레이킹 에피소드&gt;. 하늘빛으로 칠해진 바닥의 나무패널을 관객이 밟고 지나다니면서, 발길에 글자 윤곽을 파놓은 부분의 나무판들만 ‘빠지직’ 소리를 내면서 깨져 작가의 글들이 드러나는 얼개다.
바닥 설치작품인 <브레이킹 에피소드>. 하늘빛으로 칠해진 바닥의 나무패널을 관객이 밟고 지나다니면서, 발길에 글자 윤곽을 파놓은 부분의 나무판들만 ‘빠지직’ 소리를 내면서 깨져 작가의 글들이 드러나는 얼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토탈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나온 신작 <검은 새 1번 깃털>. 청동판을 열로 구부려 만든 어두운 빛깔의 깃털들을 7m가 넘는 거대한 은빛 스테인리스 뼈대에 붙인 작품이다. 작가는 이 깃털대를 바로 아래 유리판 위로 내리쳐 깨뜨린 뒤 다시 끌어올려 내걸었다. 현실의 시간만 비추는 유리판은 산산이 깨어지고, 전시 현장 위에 부유하듯 날리는 깃털의 모습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우리 일상의 시간을 성찰하게 한다. 2년 전 건축가이자 작가였던 친구 김백선의 죽음을 생각하며 만든 이 작품은 새의 날개에서 핵심인 1번 깃축과 죽음의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맞붙여 상상하면서 미래의 시간에 밀어닥칠 일상의 변화를, 육중함과 가벼움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청동 깃털의 양감과 이미지로 환기한다. 1층 전시장의 바닥 설치작품인 <브레이킹 에피소드>는 하늘빛으로 칠해진 바닥의 나무패널을 관객이 밟고 지나다니면서 몸으로 텍스트를 완성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작품이다. 관객들의 발길에 글자 윤곽을 파놓은 나무판들이 ‘빠지직’ 소리를 내면서 작가가 구상한 글들이 드러나는 얼개다. 문장은 작가 혹은 다른 한국 작가들이 서구에서 유학하거나 체류할 때 겪었던 인종차별의 기억들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이태원 신생 대안공간에서 보여주었던, 국내외 작가들한테서 얻은 여러 벌의 작업복을 일일이 빨래통에서 빠는 퍼포먼스 영상은 현실과 밀착한 예술을 하고 싶다는 작가의 고뇌를 현장의 헐떡거리는 호흡과 지친 작가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속보예술이란 타이틀을 내걸긴 했지만, 다른 현대 작가들 작업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노동의 생생한 자취가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팬데믹 상황의 견디기 힘든 중압감과 답답함을 노동하는 예술을 통해 잊어버리고 싶었다고 작가는 털어놓는다. 7월5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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