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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서울은 어쩌다가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었나

등록 2020-07-03 17:54수정 2020-07-05 21:27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서울, 현인에서 자이언티까지
‘서울’을 부르는 이스턴 사이드킥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서울’을 부르는 이스턴 사이드킥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필자에게 서울은 매혹의 대상이었다. 동해 바닷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내내 살다가 큰외삼촌 댁에 놀러 가서 처음 서울 구경을 했던 나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지금은 준공 40년이 넘은 재건축 아파트지만, 1980년대 중반이던 그 시절에는 신축이었던 잠실 장미아파트가 외삼촌 집이었다. 서울에서 보낸 첫날 밤, 해가 지고도 불빛이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에 넋을 빼앗긴 꼬마는 서울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고향에 내려가자마자 부모님에게 서울로 이사 가자고 졸랐고 몇 년 뒤 소원을 성취했다. 그렇게 30년 넘게 서울에 살았지만 지금도 저녁 어스름이 짙푸르게 깔리는 번화가 골목 등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열망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지금 그런 꼬마가 있다면 어떨까? 그때도 지방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몇 배로 어려워졌다. 몇 배라는 애매한 표현은 무책임하니 며칠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서울의 중위 아파트 가격, 그러니까 가격순대로 서울의 아파트를 줄 세울 때 가운데쯤 위치하는 가격이 9억원을 돌파했다.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는 데 걸리는 세월은 전에 비해 계속 길어지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이 독하게 아껴 매달 수백만원씩 저축해 매년 3천만원을 모은다 해도 서울의 중간쯤 아파트를 사는 데 30년(!)이 걸린다. 하아…. 그조차도 30년 동안 집값이 월급 인상분보다 상승하지 않는다는 조건인데, 그런 조건이 지켜질 리 없다. 서울 아파트를 선점한 일부 기성세대(실거주 1주택자이면서도 괜히 미안함을 느끼는 필자를 포함해)가 아닌 한, 특히 대다수 청춘에게 서울 아파트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정부는 지난달에 대체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부동산 대책을 또 발표했고 한 달도 안 돼 다음 대책을 예고했다. 이런 식의 규제정책 남발로는 부동산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전문가들 주장에 필자도 동의한다. 양적 완화로 인한 유동성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 두 가지 키워드를 꺼내볼까 한다. 코끼리와 기준. 코끼리는 그 유명한 ‘방 안의 코끼리’다. 어떤 문제에서 누구나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려는 진짜 이유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주택임대사업자를 포함한 다주택자들이 부동산 문제의 코끼리다.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인 과세 없이는, 마치 똥을 싸대는 코끼리를 놔둔 채 바닥을 아무리 쓸고 액자를 털어봤자 깨끗해질 리 없는 방처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 계속 코끼리를 외면했을까? 이미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이제야 다주택자를 조일 모양이던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 지점에서 기준 이야기를 해보자. 법과 달리 도덕은 명문화돼 있지 않으므로 보통 사람들은 소위 사회지도층을 도덕의 기준으로 삼기 마련이다. 고위공직자들에게 높은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한데, 슬프게도 그분들의 다주택자 비율이 일반 국민에 견줘 훨씬 더 높다. 이번 6·17 대책에서는 실제로 거주하지 않을 집을 구매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청담동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 대해서는 주택거래허가제라는 초유의 규제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부동산 정책의 최고사령관인 김상조 정책실장 자신이 바로 그 청담동에 일찌감치 아파트를 사놓고 다른 곳에 거주 중이다. 노영민 비서실장도 다주택자인데 반포 아파트는 그대로 두고 청주 아파트를 팔겠다고 밝혔다.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준 지역구인 청주의 47평 아파트를 버리고 겨우 20평 남짓의 반포 아파트를 선택했다니, 역시 강남 아파트가 최고인가 싶다. 대통령 바로 아래 권력자들인 청와대 실장들의 사정이 이러한데,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할 수 있을까?

서울을 담은 노랫말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현인의 ‘럭키 서울’은 6·25 전쟁 이후 건설 붐이 일던 서울을 노래했고, 패티김과 혜은이를 비롯해 여러 가수가 부른 ‘서울의 찬가’에는 1970년대의 낭만이 가득하다. 종이 울리고 꽃이 피고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자고 노래한다. 1980년대에 들어와 발표된 이용의 ‘서울’ 역시 한없이 낙관적이다. 그 뒤로 조용필이 부른 ‘서울 서울 서울’이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서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사랑과 이별의 서정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 발표된 ‘강남 스타일’이나 ‘이태원 프리덤’에 이르면 서울은 신나고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이런 분위기를 뒤집었다. 우연의 일치겠으나, 이 노래가 나온 시점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안정돼 있던 서울 부동산이 상승세로 돌아선 시점과 일치한다. 그 뒤 폭발적인 상승세가 지금까지 이어졌고, 불과 몇 년 전 10억원이 안 되었던 강남아파트들이 30억원을 오르내린다. 강남 외에도 서울 대부분 지역이 폭등한 탓에 ‘그저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는 자이언티의 읊조림 앞에 ‘어차피 서울에 집 한 채 못 살 테니’라는 말이 붙어도 이상할 게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동산이 오른 만큼 혼인율과 출산율은 급락했다.

오늘 칼럼만큼은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정부의 부동산 관계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코끼리와 기준’ 부분을 특히.

록밴드 ‘이스턴 사이드킥’의 노래 ‘서울’의 한 구절로 글을 맺을까 한다.

‘벌어 온 건 스쳐 지나가네. 먹고사는 건 그렇다 쳐도 마음 가둘 곳 하나 없는 건 좀 그렇다.’

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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