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된 강원도 양양 후포매리 고신라 고분군 1호분의 조사현장. 돌들을 쌓아 무덤방 내벽을 만들고 큰돌로 천장을 덮은 앞트기식 돌방무덤이다.
강원도 양양에서 통일이전 6세기 전반 고신라의 무덤으로는 가장 북쪽에 자리한 유적이 확인됐다.
문화재 발굴기관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원장 지현병)은 최근 조사해온 양양군 현남면 후포매리 산 32번지 일대의 고분을 처음으로 정식 조사한 결과 고신라의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으로 확인됐다고 6일 발표했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이란 무덤 속 돌방(묘실)의 한쪽 벽을 뜯어내고 추가 매장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돌방으로 통하는 동굴 모양의 묘도를 낸 무덤을 말한다.
후포매리 고분군은 해발 300m에 자리한 후포매리 산성의 주변과 그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다. 조사한 1호분은 산성의 남동쪽 해발 203m정도의 비탈길 일대의 언덕을 ‘L’자 형태로 파고 만들어진 지름 약 10m 정도의 중소형 무덤이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3.3m, 너비 1.86m, 잔존높이 1.52m가량이다. 땅을 좁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판 뒤 네모로 다듬은 돌을 9~10단 가량 쌓아 올려 내벽을 만들고, 지붕돌을 덮은 반지상식의 얼개이며, 입구는 너비 92㎝ 가량의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 막았다.
껴묻거리(부장품)는 대부분 도굴돼 6세기대로 추정되는 뚜껑·소형잔과 금동제 귀걸이, 철도자(鐵刀子:손칼) 등만 나왔다. 연구원 쪽은 “후포매리 고분군은 5~6세기 신라의 동해안 북진 및 영토 확장 과정에서 양양이 전략 요충지였음을 일러주는 중요 유적”이라며 “추가 조사를 통해 당대 양양의 정치적 상황과 신라 고분의 지방양식 등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출토된 부장품들. 대부분 도굴되고 토기와 뚜껑, 금동제 귀고리, 철도자(손칼) 등이 소량 나왔다.
통일 이전 고신라 고분군이 북쪽으로 어느 지역까지 분포하고 있을지에 대한 시기적인 논의는 국내 고고역사학계에서 중요한 탐구거리 가운데 하나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통일이전 6세기 전반까지 신라 고분의 최북단 분포 지역으로 강릉을 유력하게 생각해왔다. 강릉 일대는 5~6세기 고구려와 신라 사이의 국경 충돌이 벌어졌던 경계지대로,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강릉 일대에서 고신라 고분들이 숱하게 확인됐고, 2018년에는 시내 초당동 무덤에서 4세기 신라장수의 찰갑 등이 출토된 적도 있다. 지난 2017년 강릉 바로 위쪽에 있는 양양에서 신라계 후포매리 고분이 발견되면서 최북단 분포 지역을 양양권까지 올려서 봐야한다는 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후포매리 1호분 정식 발굴 성과로 이런 견해는 더욱 명확한 근거를 얻게됐다고 할 수 있다.
통일 직전인 6세기 후반~7세기 초반 시기가 되면 신라 무덤의 분포 영역은 오늘날의 휴전선을 훌쩍 넘어가게 된다. 나라 곳곳에 순수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한 진흥왕의 영토 확장에 따라 함경도 원산 일대까지 신라 무덤의 분포 영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이미 함경남도 안변군의 용성리, 상세포리 등에서 신라계 석실무덤이 발견된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후포매리 고분군 무덤방 내부(남쪽에서 본 모습).
2018년 강릉시 초당동 고신라 토광묘 내부에서 드러난 4세기 신라장수의 찰갑 잔해와 신라 토기의 모습.
후포매리 고분군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는 문화재청과 (사)한국문화유산협회가 ‘비지정 매장문화재’의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하여 공모한 ‘매장문화재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의 하나다. 연구원 쪽은 6일 오후 3시에 현장에서 발굴설명회를 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강원고고문화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