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퀸(여장하고 무대에 서는 남성 스타)이 되고 싶은 17살 게이 소년 이야기. 지난 4일 시작한 국내 초연 뮤지컬 <제이미>(9월11일까지 엘지아트센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언뜻 뻔한 그림이 그려진다고? 정체성을 숨기고 고민하며 친구·가족과 갈등하다가 결국 자아를 찾는 소년의 성장담? #게이 #드래그 퀸 #소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대개 이런 내용이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요즘 아이’가 주인공인 <제이미>는 그 틀을 살짝 비켜간다. 극 초반 자신을 소개하며 “나는 게이. 드래그 퀸이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제이미의 생일에 엄마 마가렛(최정원, 김선영)은 빨간 하이힐을 선물하며 “드래그 퀸이 되고 싶으면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그 꿈을 응원한다. 이모 레이(정영아)는 또 어떻고. “넌 너무 멋있어! 제이미! 넌 최고야!” 그동안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혼자서 혐오와 싸워왔던 소수자들을 다룬 작품에서 한발짝 나아간다.
실존 인물 ‘제이미’도 그랬다. 이 작품은 영국 <비비시>(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제이미: 16살의 드래그 퀸>에 소개된 실화를 바탕으로 2017년 뮤지컬로 만들어 영국 셰필드에서 첫선을 보였다. 제이미는 자신이 졸업 파티장에 가는 모습을 촬영해달라며 다큐멘터리 팀에 직접 연락했다. 드래그 퀸이 되고 싶은 제이미는 졸업식 파티에 바지 정장이 아닌 드레스를 입고 간다. 그의 꿈을 이해 못 하는 교사, 그리고 그를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에 부닥칠까 방송국 촬영팀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교사가 그의 파티장 출입을 막자 다른 학생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와 “제이미”를 환호한다. 이 모습은 뮤지컬에도 고스란히 담긴다. 뮤지컬 <제이미>의 영국 프로듀서인 니카 번스는 국내 제작사 쇼노트를 통해 “제이미와 마가렛은 삶의 굴곡을 겪지만 사랑과 선한 마음으로 결국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 조금은 유별난 아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가슴 따뜻한 행복을 전하는 공연이 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뮤지컬 <킹키부츠> 등 드래그 퀸이 나오는 작품은 많지만, <제이미> 속 ‘드래그 퀸’은 17살 소년을 만나면서 안팎으로 사회적 함의를 담아낸다. “완전 소중” 같은 요즘 청소년의 말투가 그대로 등장하는 그들의 일상에 ‘드래그 퀸의 꿈’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드래그 퀸의 모습을 한 제이미를 보면서 너무 예쁘다며 화장법을 알려달라는 반 친구들의 반응은 ‘예쁘고 튀는 것’ 좋아하는 요즘 세대와 만나 그저 제이미의 취향일 뿐, 이상한 게 아니라고 전한다. 오히려 학교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어른은 어때야 하는가 등을 생각해보게 한다. “드래그 퀸이 되고 싶다”는 제이미에게 교사는 “너의 직업 적성 검사에서 굴착기 운전기능사가 나왔다”며 “제발 현실적인 꿈을 꾸라”고 말한다. 만약 그런 제이미에게 그를 믿는 엄마와 이모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는 등 혐오·차별이 극심해진 요즘 사회에 들여다볼 지점도 많다. 제이미와 함께 무슬림인 우등생 친구 프리티(문은수)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들은 백인 사회에서 소수자이지만 덩치 큰 백인 소년 딘(조은솔) 앞에서 당당하고 급기야 그를 보듬기도 한다. 제이미 역을 맡은 조권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모든 제이미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주변을 의식해 소신껏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심설인 연출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혐오가 가득한 요즘 <제이미>를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자 배우가 드래그 퀸이 되어 공연하는 모습이 재미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제이미가 직접 공연하는 장면이 없는데도 17살 또래의 일상처럼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다. 제이미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몫이 크다. 조권과 신주협, 아스트로 엠제이(김명준), 뉴이스트 렌(최민기)이 번갈아 맡는다. 특히 조권의 연기가 도드라진다. 그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준비했고 정기 휴가 때 오디션을 봤다. 밤 10시면 취침해야 하니 마음속으로 ‘내적 댄스’를 추고 노래와 대사를 외웠다”고 말했다. 극중 제이미의 꿈은 하이힐로 표현되는데 “발끝에 물집이 잡히는”(렌) 등 배우들 모두 고생도 많았다. 보깅(패션모델 같은 걸음걸이나 몸짓을 흉내 낸 디스코 댄스), 로킹(힙합댄스의 한 장르) 등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춤의 등장도 흥겹다. 하지만 극 흐름 사이 넘버(노래)의 등장이 자연스럽지 않고, 2부에서 아빠가 자신을 혐오하는 걸 알게 된 제이미가 엄마한테 퍼붓는 뜬금없이 원망 등이 갈등을 위한 갈등처럼 억지스럽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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