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역사 왜곡·번역 오류 만발…콘텐츠 경계 허문 ‘오티티의 딜레마’

등록 2020-07-29 18:05수정 2020-07-30 16:59

넷플릭스, ‘5·18’은 ‘폭동’·동해는 ‘일본해’
“번역오류 넘은 역사왜곡” 반발 여론에 수정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전세계 공유하고
콘텐츠로 문화 흡수하는 시대 신중해야 목소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일본 넷플릭스는 한국영화 <택시운전사>를 소개하며 작품 설명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暴動)으로 표현해 논란이 일었다. “폭동을 취재하겠다는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목표로 향하는 택시운전사…”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폭동으로 지옥이 된 거리…” 등의 문구로 영화를 소개한 것이다. 2017년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당시 광주의 모습을 그린 실화 영화다. 하지만 일본 넷플릭스에는 ‘폭동’이라는 표현만 등장할 뿐 어디에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설명은 없다.

지난 4월에는 넷플릭스 코리아 자체 제작 드라마인 <킹덤>이 대만에서 <이시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돼 비난이 일기도 했다. 조선을 낮춰 이르는 말인 ‘이씨조선’에 좀비의 의미를 담은 ‘주검 시’(屍)를 넣은 것이다. <한겨레> 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넷플릭스는 제목을 <시전조선>으로 변경했다. 같은 달 영화 <사냥의 시간>의 경우, “지금 동해에 있다”는 대사를 독일어 등 6개 언어 자막으로 옮기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 비판을 받았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전세계에서 공유되는 ‘오티티(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대’를 맞아 창작자는 물론 번역자, 오티티 업계 등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영상 콘텐츠가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역사, 문화, 감수성까지 전파하는 매체로서 점점 더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단순 번역 오류를 넘어 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넷플릭스에서 소개된 &lt;택시운전사&gt; 작품 설명. 넷플릭스 갈무리
일본 넷플릭스에서 소개된 <택시운전사> 작품 설명. 넷플릭스 갈무리

넷플릭스 자체 제작 콘텐츠는 전세계 190개국에 서비스된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넷플릭스 코리아의 경우 자막은 최대 31개 언어로, 더빙은 최대 13개 언어로 제작한다. 이 방대한 번역 작업은 국내외의 외부 협력업체가 진행한다. 넷플릭스 코리아 쪽은 “우리가 만든 작품의 대본과 영상,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을 메모해둔 가이드북을 협력업체에 보내 번역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내부에 따로 ‘번역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업을 전세계 넷플릭스 직원으로 이뤄진 현지화 팀이 진행하고 완성품을 검수한다. 판권을 구매한 경우에는 방송사나 영화사에서 작업해놓은 자막을 그대로 넣기도 한다.

넷플릭스 코리아 쪽은 “수많은 나라에서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다 보니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이를 다 파악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히브리어, 힌두어, 네덜란드어처럼 번역자가 많지 않은 특수언어의 경우엔 1차로 영어 번역을 한 뒤 이를 재번역하기도 한다. 한 방송 콘텐츠 관계자는 “<사냥의 시간>도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뒤 이를 독일어로 재번역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와 상황을 모르는 외국인이 번역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lt;사냥의 시간&gt;의 한 장면. 온라인 사이트 반크 갈무리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온라인 사이트 반크 갈무리

이런 상황은 비단 한국 콘텐츠 번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지난 5월에는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서 서비스한 미국 드라마 <마담 세크리터리> 시즌1 4회에서 베트남 호이안 고대도시에 ‘중국 충칭시 푸링구’라는 자막을 표기해 베트남 시청자들이 자막 수정을 요구했다. 호이안 고대도시는 1998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인데 이를 중국 영토로 표현한 것이다. 국외 콘텐츠를 한국에 소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2016년 영국 드라마 <닥터후> 시즌6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군복을 입은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장면(7화)에서 ‘허즈번드’(husband)를 ‘남편’이 아닌 ‘친구’로 번역해 문제가 됐다. 현지 언론에서 “군인이 게이 커플을 포용한 장면으로,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시도를 한 에피소드”라고 평가받았던 부분을 왜곡한 셈이다.

&lt;킹덤&gt; 포스터. 넷플릭스 갈무리
<킹덤> 포스터. 넷플릭스 갈무리

전문가들은 콘텐츠로 문화를 흡수하는 요즘, 번역 오류는 한 나라의 문화 전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 오타와 오역을 넘어 역사 왜곡과 정체성 훼손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업체들도 번역에 더 신경을 쓰는 추세다. 국내 토종 오티티인 왓챠 쪽은 “외부 번역 업체에 맡긴 뒤, 콘텐츠를 다루는 본사 팀에서 다 같이 검수 작업을 한다”며 “부부, 연인, 직장 동료 사이에서 여성만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위계나 직급 등이 있는 관계에선 사회적 편견이 드러나지 않도록 민감하게 다룬다. 차별이나 비하, 혐오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도 둔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코리아 쪽도 “요즘은 사회적인 흐름에 맞춰 특히 더 신경 쓰려고 노력한다”며 “최근 사례를 무겁게 생각하고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