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좀 한다는 사람치고 ‘더 위처3: 와일드 헌트’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5년에 출시된 이 게임은 폴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시디피아르(CDPR)가 내놓은 위처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다. 위처는 폴란드의 작가 안제이 삽코프스키가 쓴 동명의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롤플레잉 게임이다. 이 게임에 대한 평론가들과 게이머들의 찬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 게임 덕분에 폴란드는, 시디피아르의 창업주 마르친 이빈스키의 표현에 따르면 “소세지와 보드카”의 나라에서 세계적인 게임산업 강국으로 떠올랐다. 지난 5월에는 시디피아르가 프랑스의 유비소프트를 제치고 유럽 기준 시가총액 1위의 게임회사가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위처의 첫 인상은 중세 유럽에 마법과 괴물들을 더해놓은 전형적인 중세풍의 판타지 세상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는 이 세계가 품고 있는 깊이와 냉혹함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원작 소설과 게임,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을 맡은 리비아의 게롤트가 되어 이 세계를 탐험한다. 그러나 게롤트를 살갑게 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위처는 게롤트와 같은 존재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은 괴물을 사냥하고 보수를 받아 살아가는 괴물 사냥꾼이다. 위처가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험과 유전자 변이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것은 외모에 식별 가능한 변화들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위처를 두려워하거나 경멸하고, 불길한 이방인으로 바라본다. 만약 괴물들이 설치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언제든지 사람들의 손에 목매달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위처 외에도 ‘천구의 결합’이라는 오래전의 사건을 통해 이쪽 세상에 나타나게 된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마법사들 역시 인간들로부터 박해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굴복하고, 어떤 이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서 저항한다. 게임은 당위를 한쪽으로 몰아주지 않으며, 플레이어에게 계속해서 회색의 질문을 던진다. 가령 게롤트는 차별받는 이종족의 편에 설 수 있지만, 그들이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차별에 눈을 감고 산다면, 도처에서 말뚝에 매달려 불타오르는 이종족들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한다. 어느 편에 서든 간에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 게임은 성인용이고, 정말로 성인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게롤트는 동료나 연인들과 깊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여기에는 감정뿐만 아니라 관능적인 부분들도 표현된다. 인간의 폭력성과 추함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강렬하고, 끊임없이 욕설이 등장함에도 대사들은 유치하지 않다. 캐릭터들은 복합적인 면모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지니고 있고, 주인공 게롤트 역시 뻔한 정의의 사도도, 틀에 박힌 반항아도 아닌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제 와서 이 오래된 명작에 찬사를 늘어놓게 된 까닭은 내가 최근에야 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평균 100시간 이상을 플레이해야 끝을 낼 수 있다. 어른의 게임이지만, 사회생활의 의무가 있는 어른들로서는 쉽게 손대기 어려운 분량이다. 사실 요즘 들어 책장에 쌓여 있는 사놓고 읽지 않은 책과, 라이브러리에 쌓여 있는 사놓고 하지 않은 게임이 점점 비슷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비교적 한가한 나는 마음먹으면 플레이라도 할 수 있다지만,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진정한 사회인들은 휴식을 취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니 제아무리 명작이니 고티(GOTY·게임 오브 더 이어의 약자)니 해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한편, 게임에서 게롤트는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는지, 여자도 대장장이가 될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을 듣는다. 그러면 게롤트는 한심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당연하지. 지금은 13세기라고!” 그사이를 못 참고 또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게임계에 하고 싶은 이야기다. “제발, 지금은 21세기라고!”
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