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오늘 아침 우체국에 갔고, 전보를 쳤군.” 관찰과 추리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그가 던진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지?” 상대방이 궁금해하자, 그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구두코에 묻은 ‘붉은 흙’을 관찰한 결과라고. “우체국 건너편은 도로 공사로 보도블록이 파헤쳐져 흙이 드러나 있네. 우체국에 가려면 반드시 그 흙을 밟고 지나가야 하지. 그리고 그곳 흙은 다른 곳과 달리 독특하게 붉은색이야.”
그렇다면 전보를 쳤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추리한 걸까요? “나는 자네와 오늘 아침에 계속 마주 앉아 있었고, 자네가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전보를 치려는 게 아니라면 우체국에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 읽은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속 셜록 홈스의 모습입니다. 홈스는 파트너인 존 왓슨 박사의 구두에 묻은 흙만 보고, 그가 우체국에 갔으며 전보를 쳤다는 사실을 유추해 냅니다. 물론, 이 정도는 약과죠. 담뱃재나 발자국, 문신, 술 냄새, 소지품 등으로 상대방의 출신과 성격, 직업을 알아맞히는가 하면, 이런 추리 과정들을 통해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사건을 홈스는 명쾌하게 풀어내니까요. 작은 단서 하나로 사건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실체를 파악하고 범인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 시절’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꾼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매력적인 명탐정 캐릭터는 셜록 홈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속 주인공인 탐정 에르퀼 푸아로, 미국 탐정소설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엘러리 퀸, 일본의 소년탐정 간다이치 하지메(김전일)와 명탐정 코난 등도 있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출발한 이들 탐정물은 영화,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으로 변주되며 오랜 시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제대로 된 탐정물이나 탐정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한국에서는 탐정물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탐정이란 직업 자체가 한국에선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홈스처럼 민간인이 수사기관의 수사과정에 개입하고, 사건의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한국에선 불법입니다. 탐정이란 말도 쓸 수 없었죠. 영화, 소설, 드라마에 탐정을 등장시키면 작품의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생명은 리얼리티에 있는데, 탐정이 등장하는 순간 리얼리티가 깨져 버리는 거죠. 한국에서 범죄·수사·미스터리·스릴러 장르물의 주인공이 형사나 검사로 획일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탐정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탐정> 시리즈입니다. 권상우와 성동일이 주연을 한 <탐정: 더 비기닝>(2015년·1편), <탐정: 리턴즈>(2018년·2편)인데요. 이들 영화는 제목에 탐정을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탐정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1편에서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두 주인공 강대만(권상우)과 노태수(성동일)는 각각 만화방 주인과 형사입니다. 탐정이 아니죠. 2편은 이들이 대한민국 최초의 탐정사무소를 개업한다는 설정이지만, 노태수는 탐정이 아닌 휴직 중인 형사입니다. 현실성을 고려해 탐정과 경찰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들의 수사와 증거수집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명탐정> 시리즈(각시투구꽃의 비밀, 사라진 놉의 딸, 흡혈괴마의 비밀)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도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들 작품 역시 탐정을 한국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심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영화의 배경을 암행어사를 떠올리게 하는 조선시대로 옮겨버리거나(<조선명탐정>), 배경을 파악할 수 없도록 시·공간을 특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지워버리는(<탐정 홍길동>) 식이죠. 2018년 <한국방송>(KBS2)에서 방영된 <오늘의 탐정> 역시, 현실적인 탐정 이야기가 아니라 ‘귀신 탐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국 탐정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합니다. 바로 지난 5일부터 ‘탐정’이라는 이름으로 영리활동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지난 2월 국회에서 개정된 데 따른 결과입니다. 그동안 ‘민간조사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한 이들이 이제 ‘탐정’이란 이름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에도 ‘탐정사무소’라는 간판을 달 수 있게 됐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 나라 가운데 탐정업은 한국만 유일하게 허용이 안 된 상태였죠.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셜록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나 제대로 된 탐정물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한국 탐정에는 여러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죠. 증거를 수집해서 진범을 밝히거나, 잠적한 범죄자의 소재나 은신처를 파악하는 행위는 위법 가능성이 큽니다. 변호사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게 경찰청의 설명입니다. 이런 내용을 탐정에게 의뢰할 경우, 의뢰인도 교사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가출한 배우자나 성인인 자녀의 거주지나 소재를 파악하는 일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포스터
그럼, 한국에서 현재 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동·청소년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본인의 동의가 없어도 법정대리인의 동의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부동산등기부등본 등 공개된 정보의 대리 수집이나, 상대방의 동의를 전제로 한 이력서·계약서 기재 내용의 사실확인, 도난·분실·은닉자산의 소재 확인은 지금도 허용된 일입니다.
정리하자면, 진범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거나, 어떤 이유로 사건에 개입해 진범을 찾아내는 탐정물 속 탐정의 전형적인 모습이 한국 현실에서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변수는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에 공인탐정 도입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기로 방침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현재 공인탐정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스페인 등입니다. 물론 공인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의 대상과 범위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정부로부터 자격 등을 인정받는 제도권 탐정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편에서는 한국판 셜록 홈스의 탄생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탐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판 <셜록> 드라마가 방송될 날은 언제가 될까요?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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