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 6월 다시 문을 연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의 본관 건물 ‘케이원’(K-1) 정면. 국제갤러리 제공
‘미술관 옆 동물원. 아니, 미술관 옆 약국?’
미술품을 사고파는 국내 굴지의 화랑이 전시장 옆에 약국을 차려 약을 팔겠다고 나섰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건강과 위생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생긴 변화다.
한 해 작품 매출액만 1000억원이 넘는 국내 최대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약국 운영을 새 사업으로 확정하고 개업을 준비 중이다. 이현숙(71) 국제갤러리 회장은 최근 <한겨레>에 “서울 종로구 소격동 본관 ‘케이원’(K1) 옆에 있는 한옥을 지난해 사들여 리모델링하고, 이곳에 고객의 건강 문제를 상담해주고 고급 신약과 건강식품 등도 파는 약국을 내년 중에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제갤러리가 지난 6월 리모델링한 본관 케이원(K1)의 문을 다시 열면서 공개한 3층 피트니스 공간의 모습. 화랑의 단골 고객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예약제로 개방한다. 줄리언 오피의 동영상 작품이 왼쪽 벽에 붙어 있고 안쪽 넓은 창으로는 인왕산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형석 기자
‘갤러리 약국’ 아이디어를 낸 이는 이 회장의 며느리인 송보영 부사장이다. 작품 전시와 아트페어 기획을 맡고 있던 그는 “마음을 치유해주는 그림의 기능과 심신의 고통을 덜어주는 약국의 기능이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갤러리 약국을 착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화랑 쪽의 구상을 보면, 약국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문화 공간의 일부로 들어서게 된다. 리모델링이 예정된 80여평의 한옥에 의사와 약사가 상시 근무하며 화랑 고객들에게 건강 상담을 해주고 처방을 하는 약국이 자리하고, 건강식품과 자연식 재료 등을 파는 매장과 출판물·판화 에디션 전시장이 함께 배치되는 얼개다. 송 이사는 “처방, 힐링, 쇼핑, 감상이 함께하는 콘셉트 스토어(특화된 가게) 성격이 될 것”이라며 “현재 리모델링 설계와 판매 품목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인데, 내년 여름 문을 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국제갤러리가 지난 6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한 본관 케이원 2층의 레스토랑. 천장과 벽에 양혜규 작가의 설치작품과 평면 이미지 작업을 선보였다. 노형석 기자
앞서 국제갤러리는 2018년부터 소격동 본관 ‘케이원’ 리모델링 공사를 벌인 뒤 지난 6월 다시 문을 열었다. 특히 본관 2층과 3층을 고객을 위한 다목적 룸과 ‘웰니스 케이(K)’로 명명된 예약제 피트니스실로 개조해 관심을 모았다. 국내 화랑 가운데 운동·휴게시설을 갖춘 피트니스 센터를 설치한 것은 처음이고, 국외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였다. 이 화랑은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인 1999년 국내 화랑 최초로 ‘더 레스토랑’이란 상호로 식당을 열어 2000년대 이후 국내 큰 화랑이 고급 식당을 함께 차리는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다.
약국 겸업 소식을 전해 들은 화랑가에서는 시장의 상도를 벗어난 ‘문어발 확장’이란 비판과 ‘뉴노멀 시대 해볼 만한 도전’이란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서울 북촌에서 활동해온 한 화랑업자는 “시대 상황에 맞춰 고객을 위한 서비스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미술품 거래의 본령과 크게 동떨어진 행보란 점에서 한국 대표 화랑의 품격에 어울리진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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