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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웹툰, 차마 보여줄 수 없는 ‘표현의 자유’

등록 2020-09-16 04:59수정 2020-09-16 11:40

네이버 ‘복학왕’ 비난 여론 여전한데
‘헬퍼2’, 성착취·노인 여성 고문 그려
작가들, 달라진 시대 변화 뒤쳐지고
자율규제위원회 심의 한계 드러나

만화협 “혐오 표현 기준 마련할 것”
업계 “검열 같은 법적 규제는 안돼”
전문가들 “작가·플랫폼·학계 등
사회적 합의점 만들어야 할 때”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해 논란을 빚은 네이버 웹툰 <헬퍼2: 킬베로스>. 네이버 웹툰 갈무리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해 논란을 빚은 네이버 웹툰 <헬퍼2: 킬베로스>. 네이버 웹툰 갈무리

‘1조원 규모를 넘어선 웹툰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

장애인 비하, 여성혐오 등으로 논란을 불렀던 네이버 웹툰이 최근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웹툰 <헬퍼2: 킬베로스>가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팬들이 먼저 비판을 하고 나선 것이다. 작가와 네이버 웹툰은 사과했지만, 논란이 반복되는데도 혐오 표현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는 네이버와 만화업계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논란은 팬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 <헬퍼2: 킬베로스> 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헬퍼 마이너 갤러리’의 매니저(kodoku)는 지난 10일 글을 올려 이 웹툰 속 여성혐오에 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강간, 성착취, 노인 여성 고문 등 예로 든 장면이 전체 247회 중 24회분에 이르렀다. 이후 트위터에서 ‘#웹툰내_여성혐오를_멈춰달라’는 해시태그 운동과 함께 이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번졌다.

18살 이상 등급임을 고려해도 선을 넘었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웹툰을 그린 삭 작가는 14일 밤 사과문을 내고 당분간 연재를 쉬겠다고 밝혔다. 그는 “표현 수위에 있어 만화 쪽이 다소 엄격한 점이 아쉬워 표현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노력해왔는데, 역효과를 낳은 것 같아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네이버 웹툰도 “앞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소재 표현에 있어 더욱 주의 깊게 보고 작가들과 더 긴밀히 소통하고 작업에 신중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해 논란을 빚은 네이버 웹툰 &lt;헬퍼2: 킬베로스&gt;의 한 장면. 선정성이 심한 일부는 가림 처리했다. 네이버 웹툰 갈무리
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해 논란을 빚은 네이버 웹툰 <헬퍼2: 킬베로스>의 한 장면. 선정성이 심한 일부는 가림 처리했다. 네이버 웹툰 갈무리

웹툰을 둘러싼 여성혐오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안84의 <복학왕>도 지난달 논란의 중심에 섰다. 303~304화에서 무능한 여성이 남자 상사와의 성관계로 정직원이 된 것처럼 암시했다며 비판이 쏟아지자 기안84는 문제가 된 장면을 수정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작가들의 관성뿐만 아니라 인기를 노린 무리한 설정이 논란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는 “여성혐오 표현은 과거부터 빈번했다. 최근 독자의 성인지 감수성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문제 제기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눈길을 끌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요한 건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망이다. 웹툰은 2012년 처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가 작가의 창의성과 웹툰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방심위는 그해 4월 한국만화가협회와 웹툰 자율규제 업무협약을 맺었다. 만화가협회 웹툰자율규제위원회는 민원이 제기된 웹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플랫폼에 서비스 종료, 청소년 접근 제한, 성인 인증 권고, 연령 등급 조정, 내용 수정 등 다섯 가지 조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행하지 않으면 방심위가 직접 안건을 상정해 추가 조처할 수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자율규제 조처가 이행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3년 1500억원에 불과했던 웹툰 시장이 2020년 1조원을 넘어설 정도(케이티 경제경영연구소 2019년 통계)로 급성장하고, 웹툰이 게임·드라마·영화로 확장하는 ‘원소스 멀티유스’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율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자율규제위원회에 강제 수단이 없다는 점을 들어 법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서 무능한 여성이 남자 상사와의 성관계로 정직원이 된 것처럼 암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기안84의 &lt;복학왕&gt; 속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앞서 무능한 여성이 남자 상사와의 성관계로 정직원이 된 것처럼 암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기안84의 <복학왕> 속 한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특히 최근 불거진 차별이나 혐오 논란에 관해서는 자율규제위원회 위원들 사이에 공통된 합의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다. 폭력성·선정성에 관해서는 청소년보호법과 ‘연령등급’(2018년)에 따라 청소년 유해등급을 매기거나, 성인물이라 해도 모자이크 처리 등을 권고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만화가협회 관계자는 “차별·혐오 표현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자와 작가 간에 합의점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방심위와 웹툰자율규제위원회는 오는 18일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법적 규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시대를 거꾸로 돌려 사전 심의나 검열을 연상시키는 법적 규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의 한 위원은 “문제 제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법으로 규제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서로 합의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자율규제의 기본 취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가, 플랫폼, 협회, 학계 등이 사회적 합의점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신 중부대 교수(웹툰협회 부회장)는 “관련 기관 및 단체, 정부 차원에서 작가들 스스로 성찰하고 담론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기관에서도 이런 고민을 커리큘럼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찬휘 칼럼니스트는 “혐오 표현 등 문제가 생기면 매섭게 비판해 작가들이 최소한의 눈치라도 보도록 해야 한다. 포털도 책임감을 갖고 작가와 소통해 문제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관련 영상] 웹툰계 ‘여성혐오’, 표현의 자유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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