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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가수 김창완, 쓸쓸한 노년의 시간 그리고 온기 전하다

등록 2020-10-19 04:59수정 2020-10-19 11:07

[25년만의 솔로앨범 ‘문’ 발표]
‘노인의 벤치’ ‘엄마 사랑해요’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 등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11곡

통기타로만 솔로앨범은
‘기타가…’ 이후 37년만에

“세상이 엉망진창이라 해도
여전히 세상은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 있다는 이야기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18일 솔로 앨범 <문>을 발표한 김창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18일 솔로 앨범 <문>을 발표한 김창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시간’은 강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흘러갈 뿐, 멈춰 서거나 거꾸로 가지 않는다고. 지난 60여년을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이 흘렀다고 믿지만, 그가 느끼는 시간은 달랐다. 그는 젊기도, 늙기도 했으며, 특정 순간에 고착돼 머물러 있기도 했다.

특히 홀로 생각에 잠길 때면, 시간은 흐르지 않고 간혹 멈춰 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 돼버린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시계를 보지 않고, 매 순간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자각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시간은 객관화할 수 없는, 어쩌면 한낱 관념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다. “하루에 수천번 눈을 깜빡이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요. 시간도 다르지 않죠. 스스로 자각하기 쉽지 않거든요.” 지난 14일 만난 가수 김창완이 말했다.

그가 18일 내놓은 정규 앨범 <문>(門)은 이런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앨범 부제도 ‘시간의 문을 열다’이다. “시간의 본질을 꿰뚫는 것만큼 삶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악기 편성을 최소화해 사실상 통기타로만 빚은 노래 11곡을 담았다. 솔로 정규 앨범을 낸 것은 1995년 앨범 <포스트스크립트> 이후 25년 만의 일이지만, 통기타로만 솔로 앨범을 만든 것은 1983년 <기타가 있는 수필> 이후 37년 만이다. “<기타가 있는 수필> 2집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앨범을 만들었어요. 2집을 내놓는 데 37년이 걸린 셈이죠.”

18일 솔로 앨범 &lt;문&gt;을 발표한 김창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18일 솔로 앨범 <문>을 발표한 김창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그는 친동생 김창훈, 김창익과 산울림을 결성해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했다. ‘너의 의미’ ‘회상’ ‘내 마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2008년 막내 동생 김창익이 캐나다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김창완 밴드로 활동하는 가운데 솔로 앨범을 낸 것이다.

앨범에는 쓸쓸한 노년의 시간과 온기가 동시에 녹아 있다. 타이틀곡인 ‘노인의 벤치’가 대표적이다. “나이 든 여자가 다가와 앉아도 되냐고 물었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그렇게 우린 만났어. 세월의 흔적처럼/ 노인의 벤치에 앉아서/ 날 보고 빙긋 웃었지. 나도 그녈 보고 웃었어/ 주름을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 공원 벤치에 앉아 아득한 추억을 떠올리는 노인처럼 김창완은 시종일관 읊조리듯 저음으로 노래한다. 듣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 풍경이 그려진다. “실제 경험이 아니에요. 정말 아름다운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특히, 이번 앨범에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가 다수 담겼다는 점이 눈에 띈다. 1번 트랙곡이자 연주곡인 ‘엄마 사랑해요’를 비롯해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것이 노랫말의 전부인 ‘보고 싶어’ ‘이제야 보이네’ 등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평범한 일상과 가족의 소중함이 절실해진 상태에서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던지는 위로일까. “어불성설이에요.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사회적 현실에 견주어 작품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다만, 저의 독백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는 있겠죠. 저도 이 시대를 살고, 아파하고 있으니….”

18일 솔로 앨범 &lt;문&gt;을 발표한 김창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18일 솔로 앨범 <문>을 발표한 김창완.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일찍이 ‘산 할아버지’ ‘개구쟁이’ 등의 동요를 발표한 그는 이번 앨범에도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으로 만든 곡을 담았다. ‘글씨나무’는 시골의 한 분교에서 아이들이 칠판에 낱말카드를 붙이며 한글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쓴 곡이다.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은 시장통에서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를 보고 만든 노래다. 세상을 향한 너그러운 시선이 노래를 통해 전해진다.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여전히 세상은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 있다’는 이야기를 이 시대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가 이번 앨범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그 마음은 “시간에 관한 참회록이자 사랑에 대한 반성문”과도 같은 ‘시간’이란 곡에 잘 녹아 있다.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 있기도 한단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그저 용감하게 발걸음을 떼기만 하면 돼// 잊지 마라 시간이 거꾸로 간다 해도/ 그렇게 후회해도/ 사랑했던 순간이 영원한 보석이라는 것을…”. 그가 ‘시간의 문’을 연 이유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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