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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신해철·김현식·유재하…찬바람이 불면 그리워지는 이름

등록 2020-10-26 04:59수정 2020-10-26 11:12

[올해는 랜선 추모…그들을 못잊는 사람들]

김현식 11월1일 30주기
절친 김장훈, 권인하와 랜선 콘서트
“추모는 슬퍼야 하나? 이번엔 신나게”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 못 잊어
술 마시고 헤어지며 “있을 때 잘해”

신해철 내일 6주기
중1때부터 신해철 열혈팬 된 40대
“형은 욕먹더라도 할말 하는 사람”
또다른 팬 “결혼식때 그분이 축가…
네 행복 위해 살라던 말대로 살아”
유튜브에 생전 영상 올려 공유키로

유재하 11월1일 33주기
올해 31회 맞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본선은 무관중 무대, 온라인으로
팬클럽 “모일 수 없으니 각자 추모”
깊어지는 가을, ‘그들’은 떠났다. 노래만을 덩그러니 남긴 채…. 스산한 바람은 그들이 떠난 계절이 왔다는 신호다. 신해철, 김현식, 유재하.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들은 일찍이 낙엽처럼 졌지만, 노래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그들을 기억하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멈춰서면서 추모식도, 추모공연도 모두 어렵게 됐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이 있다. ‘마왕’ ‘가객’ ‘음유시인’을 영원히 떠나보낼 수 없는 이들을 만났다.

신해철(가운데). <한겨레> 자료 사진
신해철(가운데). <한겨레> 자료 사진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놀러 간 삼촌 집에서, 노래 한곡을 들었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전까지의 삶 속에서 ‘나’는 없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살았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나자, 비로소 ‘나’란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1991년의 일이었다. 음반은 그해 3월 발매된 신해철 2집 <마이셀프>였고,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로 시작하는 노래는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

정동연(41)씨는 “그렇게 나의 ‘덕질’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신해철은 세상을 보는 눈이었다. 특히 그의 말이 주는 힘은 컸다. “해철이 형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논쟁이 되는 사안 앞에서 남들이 겁먹고 머뭇거릴 때, 욕먹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사람이었죠.” 정씨가 바라본 신해철은 어른답게 노래하고 말하는 유일한 가수였다. 대학생이 되고 그를 쫓아다니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까이에서 그를 응원하고 싶었다. 팬커뮤니티(크롬포에버) 활동을 하게 된 이유다.

임숙(43)씨도 그런 팬 가운데 한명이었다. 1988년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 티브이(TV)에서 본 그해 대학가요제 참가자가 자신의 청춘을 오롯이 지배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 무슨 남자가 저렇게 예뻐.’ 딱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임씨는 신해철을 처음 봤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신해철은 데뷔 당시 꽃미남 이미지가 강했다. 소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가 출연하는 음악 방송을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는 전국 지방공연 투어까지 따라다니는 열혈 팬이 됐다.

신해철은 그런 팬을 잊지 않았다. 2008년 자신의 크리스마스이브 공연 때, 임씨의 남자친구를 불러 세웠다. 프러포즈를 할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멀리서 수많은 관객의 손과 손을 거쳐 꽃다발이 전달되고,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던 순간을, 정작 임씨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신해철은 이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노래는 ‘일상으로의 초대’였다. “남을 위해 살지 말고, 네 행복을 위해 살아.” 신해철은 임씨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말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신해철은 2014년 10월27일 46살의 나이로 영원히 잠들었다. 장협착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탓이다. 이듬해부터 그의 기일이나 기일을 앞두고 추모식이나 추모공연이 공식적으로 열렸다. 2018년 4주기 때는 공식행사가 없었지만,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추모행사를 벌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공식적인 추모행사뿐만 아니라, 팬커뮤니티 차원의 모임도 없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고 정씨는 말했다.

팬들은 과거와 같은 방식이 아닌, 온라인을 통한 추모행사를 열기로 했다. 26일부터 28일까지 한시적으로 유튜브 크롬포에버 계정을 통해 그의 공연 중 모습을 담은 영상과 팬들이 찍은 희귀 영상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많은 이들과 그의 생전 모습을 나누며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특히, 2시간30분 분량의 신해철 20주년 콘서트 전체 영상도 선보인다.

김현식. <한겨레> 자료 사진
김현식. <한겨레> 자료 사진
11월1일 30주기를 맞는 김현식 추모행사도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오랜 시간 김현식 추모공연을 이어온 김장훈은 권인하와 함께 ‘김현식 30주기 추모 랜선 콘서트’를 연다.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의 30주기를 뜻깊게 추모하고 싶은 욕심은 크지만, 코로나19로 공연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기타 한대 두고, 온라인으로 소박하게나마 추모행사를 할 생각이에요.” 김장훈이 말했다.

김장훈과 권인하는 김현식의 역사적 ‘증인’ 같은 이들이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국민 부장님’ ‘천둥호랑이’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권인하는 1989년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의 오에스티(OST)에 수록된 ‘비오는 날 수채화’를 김현식, 강인원과 함께 불러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김장훈은 김현식과 ‘사촌설’이 불거질 만큼 그와 친분이 두터웠다. “어머니들끼리 친구여서 현식이 형과는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서로의 집을 자주 왕래하며 서로의 어머니를 ‘이모’라고 불렀다. 김현식은 김장훈을 주변에 소개할 때 ‘사촌동생’이라고 했다.

김현식은 1990년 11월1일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2살 때다. “형을 보면서 항상 의문이 들었어요. 그냥 노래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외로워하고 처절하게 노래를 하는 걸까. 아파서 떠났다기보다는, 자신을 아프게 해서 떠난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가수가 되고 노래해보니,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요.”

김장훈은 김현식과의 마지막 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이들은 함께 술을 마시고 서울의 한 호텔 라운지를 찾았다. 그곳에서 김현식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다. 기타를 잡을 줄 알았지만, 김현식은 드럼 앞에 앉았다. 그리고 드럼을 치며 노래했다. “‘저게 되는구나.’ 본능을 토해내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는 형을 집에 데려다줬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있을 때 잘해.’” 그것이 김장훈이 김현식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김장훈은 2010년 김현식의 20주기 때 헌정 앨범 <레터 투 김현식>을 발매했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김현식이 사라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였다. 김현식의 노래 11곡을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세상에 내놨다. 이듬해에는 이 오케스트라를 한국으로 직접 초청해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추모공연을 펼쳤다. “그렇게 하니까, 오랫동안 가슴을 억눌러온 형이라는 존재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장훈은 이번 랜선 추모공연을 “신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추모를 하는 것이 꼭 슬퍼하고 눈물 흘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김현식의 방식도 저의 방식도 아니에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만날 테니까. 그와 관련한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면서 구김 없이 노래하고 싶어요.”

김현식의 ‘신촌블루스’ 활동으로 인연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가 2015년부터 열어온 ‘김현식 가요제’도 올해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 경연을 통해 무대에 오를 최종 팀을 선발했다”며 “11월11일 공연을 촬영해 같은 달 20일 네이버 나우 채널을 통해 가요제를 온라인으로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재하. <한겨레> 자료 사진
유재하. <한겨레> 자료 사진
김현식이 숨을 거둔 날로부터 정확히 3년 앞선 같은 날, 유재하는 25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교통사고였다. 그가 눈을 감기 석달 전 내놓은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단 한장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한국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명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울한 편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지난날’, 김현식의 3집 앨범에도 수록된 ‘가리워진 길’ 등 수록곡 대부분이 큰 인기를 얻었다.

올해로 31회를 맞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해마다 그를 기리는 대표적인 행사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자, 유족이 음원 수익금 등으로 유재하음악장학회를 세워 신인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는 대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1989년부터 2005년을 빼고 해마다 11월께 열렸다. 조규찬, 유희열, 김연우, 루시드폴, 이한철, 방시혁, 스윗소로우 등이 이 대회 출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회는 열리지만, 예년과 달리 본선 대회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이 경연대회 출신 가수로 꾸려진 ‘유재하 총동문회’와 함께 대회를 공동주관하는 씨제이(CJ)문화재단 쪽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총 10개 팀이 진출한 본선은 11월19일 무관중 무대로 온라인으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유재하의 생일이 있는 6월과 대회가 열리는 11월 추모 모임을 이어온 팬들도 올해는 저마다 개인적으로 그를 되새기는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유재하의 팬클럽(‘유재하를 사랑하기 때문에’) 서울지부장인 류석원(49)씨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모일 수 없다 보니, 지금 상황에서는 모임이나 행사를 자제하기로 했다”며 “각자가 유재하님의 묘소를 찾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온라인으로 경연대회를 관람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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