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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가요에 재즈옷 입혀온 말로, 송창식 노래를 재즈로 부르다

등록 2020-10-28 04:59수정 2020-10-28 07:49

2010년 <동백아가씨>·2012년 <배호…>
이번엔 송창식 22곡 담아 <송북> 발매
송창식 참여해 ‘우리는’ 2절은 부르기도
말로 “이게 재즈? 비판하려면 하라죠”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lt;송창식 송북&gt;을 발표한 재즈 보컬 말로. 제이엔에이치뮤직 제공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송창식 송북>을 발표한 재즈 보컬 말로. 제이엔에이치뮤직 제공

재즈의 자유로움은 언어의 벽을 넘지 못했다. 17년 전만 해도 그랬다. ‘왜 재즈를 하는 이들은 이른바 재즈 스탠더드라고 하는 미국의 옛 노래만 부르는 걸까? 우리의 노래를 할 수 없는 걸까?’ 노래하면서 늘 들었던 의문이다. 2003년 “연분홍 치마가”로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와 ‘엄마야 누나야’ 그리고 창작곡 ‘벚꽃지다’ 등을 담아 한국어 노랫말로 된 재즈 앨범을 실험적으로 발표했다.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를 때보다 감정을 전달하기도 쉬웠다. 듣는 이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재즈 좀 안다’는 이들은 달랐다. “이게 무슨 재즈냐. 가요지”라고 빈정거렸다. 오기가 생겼다. 미국에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있다면, 한국에는 ‘동백아가씨’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전통 가요에 재즈의 옷을 입혀보자’고 결심한 이유다. ‘재즈 스탠더드’가 아닌 ‘케이(K) 스탠더드’의 출발이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왜 우리는 재즈를 영어로 부르고 들어야 할까요.. 민족주의니 국수주의니, 비판하려면 하라죠. 저는 한국말을 영어보다 잘하거든요. 우리나라 사람에게 통째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혜택을 주고 싶었어요.”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정수월)가 말했다.

그는 송창식의 명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송창식 송북>을 최근 발표했다. 2014년 자신의 6집 <겨울, 그리고 봄> 이후 6년 만의 앨범이다.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직접 편곡해 담았다. 송창식은 1968년 윤형주와 듀오 ‘트윈폴리오’로 데뷔한 뒤, 1970년 솔로로 전향해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우리는’ ‘고래사냥’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히트곡도 많지만, 그의 노래가 대중가요의 전형적 작법에서 벗어나 파격적이고 독보적인 점이 도전의식을 자극했다는 것이 말로의 설명이다.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lt;송창식 송북&gt;을 발표한 재즈 보컬 말로. 제이엔에이치뮤직 제공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송창식 송북>을 발표한 재즈 보컬 말로. 제이엔에이치뮤직 제공

말로는 한국 대중음악의 유산을 재즈로 재해석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앨범은 <동백아가씨>(2010년)와 <말로 싱스 배호>(2012년)에 이은 그의 세번째 ‘케이 스탠더드’ 작업이다. <동백아가씨>는 ‘신라의 달밤’ ‘목포의 눈물’ ‘동백아가씨’ 등 전통 가요 11곡을 재즈로 편곡해 발표한 앨범이고, <말로 싱스 배호>는 196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배호의 노래를 새롭게 해석한 성과물이다.

말로는 이번 작업에 1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었다. “선생님(송창식)은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거인’ 같은 존재인 만큼 곡의 장르도 다양하고 정말 방대했어요. 수많은 노래 가운데 22곡을 택하고, 이를 편곡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의 독보적인 창법과 목소리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선생님의 곡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면 맛이 안 나는 경우가 많아요. 질그릇처럼 투박한 제 목소리의 맛을 낼 수 있도록 편곡하는 게 관건이었죠.”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피리 부는 사나이’와 ‘왜 불러’다. 각각 플라멩코와 스윙으로 재탄생했다. ‘선운사’는 보사노바로, ‘고래사냥’은 블루스, 록 등이 결합한 곡으로 바뀌었다. 1번 트랙 곡인 ‘가나다라’는 4박자 원곡을 4박자와 3박자가 변주되며 펼쳐지는 듯한 7박자 곡으로 재편해, 원곡의 토속적 해학을 살리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눈에 띄는 노래는 송창식의 목소리가 담긴 ‘우리는’이다. 송창식은 ‘한마디만이라도 선생님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는 말로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이 곡 2절 전체를 불렀다.

말로는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잊읍시다’란 노래에 깊은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선듯선듯 잊읍시다. 간밤 꾸었던 슬픈 꿈일랑/ 아침 햇살에 어둠 가시듯 잊어버립시다”로 시작하는 노래다. “지난 5월 제가 이 노래를 편곡할 때, 지인을 잃었어요.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이 노래를 통해 그분의 아내와 가족을 위로할 방법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다시 만날테니, 선듯선듯 잊자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lt;송창식 송북&gt;을 발표한 재즈 보컬 말로. 제이엔에이치뮤직 제공
송창식의 노래 22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 <송창식 송북>을 발표한 재즈 보컬 말로. 제이엔에이치뮤직 제공

그는 지난 8월 별세한 한국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아끼는 후배였다. 고인이 만들고 평생 운영한 재즈클럽 ‘야누스’를 이어받아 ‘디바 야누스’라는 이름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당신께서 보컬리스트였던 만큼 뮤지션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셨어요. 오직 보컬이 노래하기 편한 환경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셨죠.” 그가 기억하는 박성연은 늘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유력 후원자들이 클럽에서 말로의 공연을 보고 합석을 청할 때마다 막아준 이도 바로 박성연이었다. “제겐 든든한 보호막 같은 존재였죠.”

말로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스스로 응원할 수 있는 음악가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배에게 물려주는 날까지 ‘야누스’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래하고 싶다”는 바람도 빼놓지 않았다. 선배이자 스승과도 같았던 박성연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 꿈에 다가서기 위해 그는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자유의 노래를 품고서.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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