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국악그룹 노올량. 왼쪽부터 김용원(베이스 기타), 민소윤(대금), 박유민(보컬), 강민규(피아노), 고명진(타악기). 노올량 제공
들에서 노래는 사라졌다. 농업이 기계화하면서 들노래의 터전은 무너졌다. 바뀌어버린 삶 속에서 이제 노동과 노래는 함께하지 않는다. 선조들은 달랐다. 몸의 움직임이 곧 운율이었다. 농악은 그 육신의 장단을 이탈하지 않고 몸 밖으로 뻗어 나와 신명에 가닿았다. 이 신명의 노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무형문화라고 하잖아요. 시대에 맞게 해석되고 불리던 노래가 이제는 무형의 박물관에 모셔져 보존의 대상이 돼버렸어요. 유형문화와 다르지 않게 된 거죠.” 창작국악그룹 노올량의 민소윤이 말했다. 그는 춤도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처용무와 조선시대 처용무가 달랐어요. 시대에 맞게 계승, 발전, 변화했는데 이제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보존해야 할 대상이 된 거죠.” 박제된 문화는 대중과 멀어졌다. 그는 “국악을 전공하며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우리의 가치 있는 문화를 알릴 수 있을까’가 늘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노올량이 최근 발표한 첫번째 정규 앨범 <귀한 선물>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20개 종목 가운데 9개 종목을 현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 모두 12곡의 노래로 풀어냈다. 소재로 삼은 대상은 농악, 제주해녀문화, 처용무,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매사냥, 씨름, 가곡, 아리랑, 한산모시 짜기다.
노올량은 5인조 혼성팀이다. 음악감독이자 대금연주자인 민소윤을 중심으로 강민규(피아노), 김용원(베이스 기타), 고명진(타악), 박유민(보컬)이 모여 2018년 팀을 꾸렸다. 팀 이름은 경기민요의 ‘놀량’에서 따온 말로 ‘놀아보자’란 뜻을 담았다. 이들은 한반도 남쪽 지역 섬을 돌며, 주민들의 이야기와 삶의 애환을 그 지역 토속민요에 담아 함께 노래하고 기록하는 <섬 아리랑 프로젝트>와 <명절에 듣기 좋은 국악> 싱글 앨범을 통해 과거·현재가 어우러진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여왔다. 11월 말에는 유년층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아리랑’을 창작해 발표한다. 힙합, 발라드, 밴드, 트로트 등 세대별로 선호하는 음악 장르를 아리랑에 녹이는 작업이다.
이번 앨범에는 모두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넉넉하게 담겨 있다. 대표적인 노래가 타이틀곡인 ‘씨를 뿌려주소서’(제주 칠머리당 영등굿)다. 영등굿은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마을굿이다. 음력 2월1일이 되면 제주를 찾았다가 같은 달 보름에 제주를 떠난다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을 맞이하고 보내는 의식이다. 주민들은 이 굿을 통해 해녀와 어부들의 풍어를 기원하는데, 노올량은 이 노래를 통해 이 시대의 평안을 기도한다.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를 뿌리시고/ 지혜와 용기로 굳세게 살아가게 하소서/ 그 모든 걸 홀로 외롭지 않게/ 그 모든 걸 혼자 누리지 않게/ 넉넉히 공평히 나누어 주소서.” 신라시대 처용설화를 담은 ‘주술의 처용, 고뇌의 처용’(처용무)에서도 세상의 모든 가난과 배고픔, 병란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이들의 노래는 신명과 정한을 넘나든다. 풍년을 기원하는 ‘오채’(농악)와 씨름판의 왁자지껄한 풍경을 담은 ‘한판’(씨름)에서는 흥겨운 놀이판이 펼쳐지고, 물질하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딸의 마음을 노래한 ‘숨비소리’(제주해녀문화)와 고난의 순간을 풀어낸 ‘일식’(가곡)에서는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한단 묶었네’ ‘기억의 숨결’(이상 아리랑)은 아리랑을 모티브로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전한다.
다양한 장르의 곡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9개 종목별로 전수자나 이수자를 만나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아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다큐멘터리와 관련 전문서적을 보고 상상을 많이 하며 곡을 썼던 기억이 나요.”(강민규)
민소윤은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선조에게 받은 귀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또한 후대에 물려줘야 할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박제된 유산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에 기억을 더하고, 손끝에 숨결을 담아”서 말이다. 이들이 이번 앨범에 <귀한 선물>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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