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남 작가가 자신의 미디어아트 대표작 중에 하나인 김홍도의 ‘묵죽도’ 영상을 설치해 놓은 스튜디오의 다실에서 지난 5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용희 기자
“광주의 역사문화거리인 양림동에 시민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미디어아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단순히 전시를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5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이이남 스튜디오’를 오픈한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51) 작가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공사 3년 만에 10일 정식 개관한 스튜디오를 이 작가와 함께 미리 둘러봤다.
광주 근대거리 양림동에 새 둥지
작품 상설 전시장·창작 작업실
갤러리 카페도 열어 시민에 개방
“예술은 언제나 접할 수 있어야”
고전회화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
20여년 만에 세계적 독창성 ‘명성’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근대문화거리 중심부에 자리한 이이남스튜디오가 10일 문을 열었다. 사진 김용희 기자
작품에 몰두해야 하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공간을 개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업과정을 시민과 공유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광주에 미디어아트를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학생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원도심의 양림동에서 적당한 건물을 구하게 되어 평소 꿈꿨던대로 공간을 꾸며 봤습니다.”
이 작가가 터를 잡은 양림동은 100여년 선교사들의 사택과 전통 고택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다형 김현승 시인, 중국 3대 음악가로 꼽히는 정율성,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를 쓴 조소혜 작가, 소설 <징소리>의 문순태 작가를 포함해 고 배동신·고 이강하·황영성·우제길 등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들도 양림동을 거쳐 갔다.
이이남 스튜디오는 1층과 2층에 이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거나 토론회를 할 수 있는 갤러리 카페를 꾸며놓았다. 사진 김경애 기자
이 작가는 2017년까지 제약회사(신광약품)의 사옥이었던 2층짜리 건물을 리모델링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되살렸다. 이곳은 1980년 5·18민중항쟁 때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살았던 사택 자리여서 의미를 더했다. 건물 1층에는 대형 유리창을 설치해 야외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과 카페를 배치했다. 2층에는 이 작가가 그동안 모은 예술서적과 도록 등을 구비한 도서관 형태의 창작 스튜디오와 사무실, 음악감상실 등이 들어섰다.
건축연구소 유토의 대표인 박태홍 건축가가 재설계한 건물은 자연채광이 되도록 한 게 특징이다. 유리로 된 천장을 설치한 뒤 2층 바닥을 뚫어 1층까지 햇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또 1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도 설치해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로 꾸몄다. 나선형 계단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를 재해석한 이 작가의 대표작을 감싸고 있는 형태다. 1층에는 성모 마리아를, 옥상으로 이어지는 천장에는 예수 조각상을 걸어 건물 밖에서도 보이도록 설치했다.
옛 신광약품 건물을 리모델링한 박태홍 건축가는 이 작가의 대표작인 ‘피에타’를 나선형 계단과 연결지어 자연채광이 되도록 배치해 이이남 스튜디오의 상징 공간으로 연출해놓았다. 사진 김경애 기자
이이남 작가의 ‘피에타’ 상부 작품인 예수상이 나선형 계단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유리천장에 설치돼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유리 통창을 활용해 자연채광을 최대한 살린 이이남 스튜디오는 밤에도 내부 설치작품이 보인다. 사진 김경애 기자
이 작가는 “애초 창작 스튜디오와 전시실로만 구성하려고 했었는데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는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카페도 운영하기로 했다. 아직 어떻게 꾸려갈지 고민이 많지만 일단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계획은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처럼 대중과 교감을 위해 노력하는 까닭은 그 자신 새로운 미술 장르인 한국의 미디어아트를 앞장서 개척해온 선두주자로서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20여년 만에 중견작가로 성장하기까지 가난한 예술가의 여정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거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1995년 조선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애초 조각에 매진했다. 1997년 어느 날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체험하면서 고전회화를 움직이는 화면으로 보면 재미있겠다는 착안을 했다. 눈발이 날리며 쌓여가는 김홍도의 ‘묵죽도’, 점차 노늘이 지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눈물을 흘리는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 동서양의 전통회화를 디지털로 재해석해낸 것이다.
이이남 스튜디오의 2층 도서관 겸 작가의 창작공간. 사진 김경애 기자
이이남 스튜디오는 2층 도서관의 유리 천장을 통해 자연채관이 1층 전시장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사진 김경애 기자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재창조해낸 미디어아트 작품들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가 덮친 올들어서도 4차례나 중국 출장을 다녀오느라 수차례 자가격리와 진단 검사를 받았을 정도다. 지난 6월 룩셈부르크 아트코코갤러리, 9월 대만 형이상학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폴란드 와지앤키 왕궁박물관 단체전(10월3일∼11월29일)에도 참가하는 등 이 작가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광주는 이 작가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노력 덕에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분야 창의도시로 지정될 수 있었다. 이 작가는 “그동안 국외전시를 많이 했지만 올해는 정말 힘든 해였다. 대만 전시를 준비하러 갔을 때 3주간 격리됐는데 우울증이 걸릴 정도였다. 어서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 광주 미디어아트를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가 시민의 휴식처이자 미디어아트를 일상 속에서 즐기는 문화 공간이 됐으면 한다. “20년 전 가난한 예술가 시절에는 개인이 미디어아트 전문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이제는 시민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미디어아트가 언제든지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예술로 인식되길 바랍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