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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백신은 우리를 구하지 못한다

등록 2020-11-13 17:07수정 2020-11-14 20:10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오버 더 레인 보

미국 대선 뉴스가 잠잠해질 때쯤 또 하나의 뉴스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비아그라로 유명한 제약사 화이자가 독일의 바이오엔테크사와 함께 코로나 백신을 만들어냈다는 뉴스였다. 정확히 말하면 3차 임상시험에서 꽤나 높은 예방 효과를 보였다는 중간발표였는데도 언론은 당장 백신이 만들어질 것처럼 대서특필했다. 세계 증시가 요동치고 경기회복에 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필자는 한 편의 영화와 한 곡의 노래를 떠올렸다.

<러브 앤 드럭스>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지? 파릇파릇하던 시절의 제이크 질런홀과 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은 로맨스물이자 섹스 코미디, 휴먼 드라마다. 구구절절 세 장르를 다 언급한 이유는 이 영화가 꽤나 높은 수준으로 세 장르 각각의 합격선을 넘는 수작이기 때문. 실제 화이자 제약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비아그라가 출시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업 현장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코로나 백신 개발이 멀지 않았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이 영화와 함께 떠올렸던 노래는 ‘오버 더 레인보’. 무려 1939년에 개봉했던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았던 주디 갈런드가 처음 불렀는데 이후에도 수많은 가수가 자기만의 편곡으로 노래했다. 재즈, 록, 발라드, 아카펠라, 보사노바 거의 모든 장르에 다 잘 어울리는 묘한 곡. 잠시 가사를 보자.

무지개 너머 하늘 높이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나라가 있어요/ 꿈을 꾸면 정말로 이루어지는 곳이죠/ 언젠가 나는 별을 보고 소원을 빌고/ 저 하늘에 겹겹이 쌓인 구름 위에서 잠을 깰 거예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녀요 / 왜 나라고 날 수 없겠어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 소식을 듣고 이 노래를 떠올린 이유가 희망적인 제목과 노랫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 뒤에 얽힌 탐욕의 역사 때문이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던 아역 배우 주디 갈런드의 처참한 삶에 대해 몇가지만 언급해본다. 엄마라는 사람은 미성년자인 자기 딸을 출연시키려고 영화 관계자들에게 성 상납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제작진은 밤새도록 촬영을 시키려고 아이에게 마약을 먹였고, 이런 학대의 후유증으로 주디 갈런드는 평생 약물에 중독돼 40대에 요절하고 말았다. 동심의 세계를 담은 스크린 뒤에서 동심을 짓밟은 끔찍한 범죄가 있었음을 알아두자.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오늘부터의 세계>는 세계의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는 책이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을 인류의 탐욕이 빚어낸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물 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야생의 터를 침범하는 인간의 활동, 그로 인한 야생동물의 이동이 도리어 인류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논리인데 필자도 백번 동의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심지어 다른 문명을 짓밟는 행위를 찬양해왔다. 산업혁명을 숭배하고, 화약과 플라스틱에 열광하고, 콜럼버스 같은 약탈자의 생애를 학교에서 배웠다. 무지개 너머 꿈의 나라를 펼쳐낸 스크린 뒤에서 벌어진 끔찍한 아동 학대처럼, 도전과 정복,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끔찍한 자연 학대가 벌어졌던 것이다.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의 수십억년 역사상 최초로 행성 전체의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린 종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그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첫번째 세대가 된 것이다. 핵전쟁이나 전염병, 혹은 기후변화로 인한 상상 못 한 재난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세상을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했나? 코로나19보다 더 지독한 바이러스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대단한 마법이 아니라 그저 신고 있던 구두를 세번 구르기만 하면 됐다. 우리는 어떻게 지속가능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도 간단하다. 성장과 팽창의 치킨게임을 멈추면 된다. 물론 수많은 국가가 합의를 이뤄내는 일은 절대로 간단치 않겠지만, 기존의 산업 인프라를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방향만은 분명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조 바이든의 당선은 정말 다행이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다 해도 ‘인간이 바이러스에 승리했다’는 식의 기사 헤드라인은 보고 싶지 않다. 인간의 오만만큼 무서운 바이러스는 없으니까.

‘오버 더 레인보’는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역시 주디 갈런드가 부르는 원곡이 최고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저작 재산권 보호 기간이 만료되어 유튜브에서 그냥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대단한 걸작인지라 지금 봐도 매혹적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쯤 지나 주인공 도로시가 이 노래를 부르니 그 부분만이라도 감상해보시길. 하나만 더 추천하자면 속주기타리스트 크리스 임펠리테리의 화려한 연주곡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 연주는 끝내주는데 제목에 왜 한 단어가 더 들어갔는지는 모를 노릇.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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