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 석축해자를 구성하는 두 개의 연못 사이 공간에 닦았던 통일신라~고려, 조선시대의 작은 도로 모습.
신라 천년 왕궁터인 경주 인왕동 월성(국가사적)을 둘러싼 방어용 연못들 가운데 하나인 1호 석축해자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굴착된 사실이 밝혀졌다. 또, 해자의 나누어진 두 부분 사이 공간에는 월성과 북쪽 계림을 잇는 옛길의 흔적이, 해자 북쪽에는 공공시설 등으로 추정할 수 있는 통일신라기 대형건물터도 드러났다. 계림은 신라시조 김알지가 금궤에서 탄생했다는 설화가 깃든 곳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월성의 1호 석축해자를 물이 흐르는 원래 경관대로 복원하기 위해 미발굴 구간을 조사하던 중 두 부분으로 나뉜 해자의 원래 조성 흔적과 계림으로 가는 소형 도로 흔적 등을 확인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연구소 쪽은 “월성을 둘러싼 주요 방어용 도랑 연못 가운데 하나인 1호 석축 해자가 1-1호 해자와 1-2호 해자로 구분되는 양상이 드러나 구체적인 해자의 배치 얼개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자 북쪽의 통일신라시대 적심 건물터와 토층 세부.
경주 월성 발굴조사 구역들 가운데 서쪽에 있는 에이(A)지구와 그 앞에 있는 서쪽 성벽 조사구간(노란 네모선)의 모습. 이곳에서 2017년 성벽 축조를 위한 희생제의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나와 관심을 모았다.
구획된 두 개의 해자 사이에서 확인된 도로 터는 5m 이하의 소형 도로다.
신라시조에 대한 국가 제의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계림, 황남동 등지 대형건물터 유적과 통한다는 점에서 왕궁 영역과 내부적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의 자취로 볼 수 있다고 연구소 쪽은 분석했다.
조사단은 또 2017년 월성 성벽을 축조할 당시 희생제의에 바친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발견됐던 서쪽 성벽의 축조 공법도 확인했다. 조사결과 성벽 아래 기저부를 조성할 때 볏짚을 포함한 각종 유기물질, 목탄 등을 섞어 흙층과 번갈아 깔았던 흔적이 흙덩어리(토낭)를 쌓은 자취와 더불어 발견됐다.
성벽 몸체 안쪽에서는 돌을 일렬로 쌓은 흔적(석렬)도 나타났다. 월성은 파사왕 22년인 101년 처음 궁성을 쌓고 명칭을 붙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지며 2014년 12월부터 장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쪽은 월성을 네개 권역으로 나눠 서쪽에 있는 에이(A)지구와 건물터들이 밀집된 가운데 부분 시(C) 지구를 성벽을 둘러싼 해자 등과 함께 우선 조사대상으로 삼고 발굴해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