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오디션 프로그램마저 ‘부모 소환’…K팝 스카이캐슬?

등록 2020-12-04 17:31수정 2020-12-05 02:31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엠넷 ‘캡틴’

지난달 19일, <엠넷>의 새 오디션 프로그램 <캡틴> 첫 회가 방송되었다. 하루 전날엔 엠넷의 ‘프로듀스 순위 조작 사건’의 항소심이 열렸다. 재판부는 전 시즌 투표 조작 혐의를 인정해, 안준영 피디와 김용범 책임 프로듀서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더불어 투표 조작으로 탈락한 이들의 진정한 피해구제와 출발을 위해 13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억울하게 탈락한 연습생들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국민 프로듀서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시청자들은 방송에 대한 극대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재판부의 지적처럼, 오디션 투표 조작 사건은 우리 사회에 상흔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10대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새로 내놓다니, 엠넷은 ‘논란으로 논란을 덮는다’ 전략을 택한 모양이다. <캡틴>도 시청자 투표를 유지한다. 제작진은 두 개의 음원 플랫폼을 통해 집계하고 있으며 외부인 참관 제도로 공정성을 보완했다고 덧붙인다. 그보다 제작진은 다른 것을 봐주길 바라는 듯하다. 참가자들의 부모를 무대 위로 올려 경쟁의 화력을 높이고 새로운 논란에 불을 지피려는 모양새다.

<캡틴>은 ‘부모 소환 10대 오디션’ 혹은 ‘케이팝 스카이캐슬’을 표방한다. 상금과 데뷔 기회를 놓고 10대가 경쟁하는 기본 구도에, 부모들의 교육열을 얹었다. 프로그램은 부모들의 모습을 분주하게 담는다. 아이의 연습을 지원하는 모습, 다른 부모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가족의 사연, 기도와 닦달, 눈물까지. 제작진은 부모 설명회까지 열었다. 공연 전엔 부모를 무대로 불러 심사위원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가수가 되려는 아이의 꿈을 계속 지원하는 게 옳은지 묻는 부모의 표정이 절박하다. 제작설명회에서 심사위원 이승철은 “지금쯤이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오디션 프로이며, 일종의 ‘카운슬링 프로그램’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캡틴>이 부모들의 조바심에 부응하고 화답하고 편승하는 프로그램이란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부모들은 자식의 무대를 응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올린 전공자로 음정을 잡아주며 연습시키는 엄마도 있고, 카메라 감독으로 아이의 표정을 지도하는 아빠도 있다. 아이의 진로에 따라 이사를 하고 약차를 싸 가지고 다니며 매니저를 자처하는 (지)극(정)성 아빠도 있다. 어려서부터 매달 700만 원의 사교육비를 쏟아부었다는 부모도 있고, 예고 입시나 유학 정보에 눈을 번뜩이는 부모도 있다.

굉장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언제부터 케이팝이 부모들의 뒷바라지 경쟁이 펼쳐지는 또 다른 입시 판이 된 건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는 반항이거나 정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려는 일탈로 여겨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케이팝 스타가 되겠다는 이들은 ‘베짱이’가 아니라 ‘일개미’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듯 경쟁은 피 튀기고, 기획사 연습생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더라도 소수만이 데뷔 기회를 얻는다. ‘아이돌 사관학교’라 불리는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를 비롯한 예고 입시도 치열하다. 사학비리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그곳에 입학하려는 사교육 시장이 성황을 이룬다. 이런 장이 열렸으니, 부모의 지원이 무관할 리 없다. 단순한 정보력이나 재력만이 아니다. 현재 40~50대 부모 세대는 교육을 받고 각 분야에서 전문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화 자본이나 인맥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부모의 지원과 무관하게 확실한 재능과 열정을 타고난 아이들이 있다. 원석 같은 그들의 실력은 듣는 이의 눈을 번쩍 뜨게 한다. 이런 참가자들의 존재가 허다한 논란 속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게 하는 명분과 콘텐츠를 제공한다. 하지만 케이팝 무대마저 부모의 뒷바라지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공정성을 둘러싼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실력을 강조할수록 부모의 영향력이 커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아이를 부모로부터 분리해 사회가 평등교육을 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각자의 소질에 맡게 계급을 부여하자고 주창했다. 그의 ‘세습되지 않는 계급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공교육이 아이들을 맡아 키웠다. ‘부모님 모셔 오라’는 말은 가장 큰 벌이었고, 공교육과 시험만으로 빈농의 자식이 엘리트가 되는 것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다. 임명묵의 글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에서 분석하듯, 이는 혁명과 내전으로 폐허가 된 100년 전 러시아에서 ‘발탁자’ 세대가 그러했듯 한국전쟁 이후 강제로 평등해진 사회에서 586세대들이 경제개발의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구소련의 ‘노멘클라투라’(공산귀족)처럼 변한 이후, 교육과 인맥을 통해 계급이 세습되면서 노동자의 자식이 엘리트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제 교육에서 부모의 개입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영화 <4등>은 부모의 안달복달을 제대로 그리며 아이의 열정으로 초극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매우 희귀한 해피엔딩일 것이다. 귓전에는 영화 <마더>의 “넌 엄마도 없니?”라는 그로테스크한 대사가 이명처럼 울린다.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말한 누군가를 감옥에 넣더라도, 그 말을 부인할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공정성이 무슨 소용이랴. 수능시험 즈음에 드는 씁쓸한 생각이다.

대중문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하버드생 재벌 사위, ‘눈물의 여왕’서 동그랑땡 굽는다 1.

하버드생 재벌 사위, ‘눈물의 여왕’서 동그랑땡 굽는다

“K팝 발전 해치는 K팝 시상식”…오죽하면 음악계에서 반대 성명 2.

“K팝 발전 해치는 K팝 시상식”…오죽하면 음악계에서 반대 성명

국립미술관과 회고전시 갈등 빚은 김구림 작가 “한국 떠나겠다” 3.

국립미술관과 회고전시 갈등 빚은 김구림 작가 “한국 떠나겠다”

원작보다 섬뜩한 연상호판 ‘기생수’, 기생생물은 볼 만한데… 4.

원작보다 섬뜩한 연상호판 ‘기생수’, 기생생물은 볼 만한데…

‘아동문학계 노벨상’ 이수지 작가 “한국 그림책 역동성 세계가 주목” 5.

‘아동문학계 노벨상’ 이수지 작가 “한국 그림책 역동성 세계가 주목”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