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사의 핵심유물인 ‘을사년’ 명문 토기를 실측한 그림.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 ’(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이란 14개의 한자글자가 새겨졌다. ‘을사년 3월 15일 모시산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로 일단 해석된다. 해석된 명문 내용으로 미뤄 토기의 제작연대는 645년, 제작지는 모시산으로 추정 되는 충남 예산 또는 덕산 제작자는 국이란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연구소 쪽은 설명했다.
6~7세기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성이 있던 충남 부여의 부소산성에서 ‘을사년(乙巳年:645년)’ 연대 명이 새겨진 백제 토기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최근 부여읍 부소산성(국가사적) 일대를 발굴 조사해 백제~통일신라 시대 성벽과 기왓장으로 쌓은 와적기단 건물터, 집수시설 터 등을 찾아냈으며 ‘을사년(乙巳年)’, ‘북사(北舍)’ 등의 글자가 새겨진 토기도 발굴, 수습했다고 8일 발표했다.
‘을사년(乙巳年)’ 연대 명이 새겨진 백제 토기 실물. 부소산성 집수시설 터 안에서 출토됐다.
부소산성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 터에서 나온 수많은 백제 토기들. 합과 그릇, 그릇 받침(기대)들이 보인다.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 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둘레가 2.2km에 이른다. 지난 7~8월, 산성 안에 재난 방재 관로를 만드는 공사 과정에서 성벽, 건물터, 집수시설 터 등이 드러났다. 이후 연구소 쪽이 긴급발굴 작업에 나서면서 내부 군창터, 사자루, 궁녀사 구간 등에서 백제시대 이래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나왔다. 특히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 터 안에서는 ‘乙巳年(을사년)’, ‘北舍(북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 토기류와 중국제 자기, 칠기 등이 사비 시대 토기 수백여점과 함께 출토됐다. 핵심유물인 ‘을사년’ 명문 토기에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 ’(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이란 14자 명문이 새겨졌다. 명문은 ‘을사년 3월15일 모시산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로 해석된다. 토기의 제작 연대(645년)와 제작지(예산 또는 덕산으로 추정), 제작자를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고 연구소 쪽은 밝혔다. 출토된 백제 토기들은 완형에 가까운 그릇 받침(기대), 보주 모양의 뚜껑, 전 달린 용기 등이며, 7세기 신라 병형토기도 일부 섞여 있다.
궁녀사 구간 집수시설 터. 이 유적에서 ‘을사년’연대 명과 ‘북사’가 새겨진 백제 토기와 중국산 자기, 칠기 등이 출토됐다.
부여 부소산 자락의 부소산성 전경. 산 아래쪽은 부여 시가지이며, 위쪽 산 너머로 백마강이 보인다.
부소산성에서는 1980~200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벌여 백제~조선시대 성벽과 백제인들이 땅을 파고 만든 수혈 건물터와 나무기둥을 줄지어 박아 엮은 목책열, 조선시대 군수물자 창고 터 등을 발견한 바 있다.
이번 조사결과는 11일 오전 10시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
youtube.com/nrichpr)을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