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다가 글을 쓴다. 사회의 분위기도 내 마음도 조금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한달쯤 전, 방송인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다는 뉴스가 화제를 모았다.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와 우려하는 목소리, 심지어 비난하는 목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어떤 현상에 대해 가감 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바람직한 일이니 나도 오늘 하나를 보태본다.
필자는 십수년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오래오래, 아주 깊이 고민한 적이 있다. 이번에 사유리의 출산이 이슈가 되면서 다시 소환된 허수경 때문이다. 때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허수경의 가요풍경>이라는 <에스비에스>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나는 연출자였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꽤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와 함께한 시절은 유독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 가만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데워진다.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으로 썼던 기타 연주곡도 귓가에 맴돌고.
매일같이 일하는 디제이가 전례 없는 비혼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담당 연출로서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뱃속에서부터 별이라고 불러서인지 정말 별처럼 반짝이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일 먼저 병원을 찾아갔고, 지인들끼리 모여 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회를 봤던 기억도 난다.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스비에스)에서 비혼 출산을 주제로 그를 취재할 때 매니저처럼 따라다녔던 일도, 몇살 차이 안 나는 우리 아들과 별이가 그의 집 마당에서 만났던 순간도 생생하다. 지금은 흐뭇한 마음으로 글을 쓰지만, 돌아보면 친누나처럼 애틋한 그의 선택을 단박에 응원하기 힘들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고민의 나날이 꽤 길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싸웠던 서로 다른 내면의 목소리가 지금 수많은 사람의 입과 손을 통해 우리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본다.
예전에 썼던 칼럼에서 동성애는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검은색 머리카락, 허스키한 목소리가 선악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듯 동성애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비혼 출산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타고난 성적 지향성과 달리 엄연한 선택의 문제다. 게다가 비혼 출산으로 태어나는 아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버지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기에 어느 정도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허수경의 비혼 출산을 지지하기로 결심했던 때로부터 13년을 더 살고 세상을 경험한 지금, 필자는 훨씬 더 확신에 차서 사유리의 비혼 출산을 지지한다. 원치 않는 아기를 낳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 것처럼 아이를 낳을 권리도 보장해줘야 한다. 물론 비혼 출산을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이 내세우는 반대 근거 중에 일리 있는 것도 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거나, 정자를 기증하고 기증받는 과정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 유독 나를 슬프게 만드는 표현이 있다. 사유리에게 돌을 던지는 이유랄까.
“아이는 아빠가 필요해요.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아빠가 있어야 해요.”
이상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많은 한부모 가정 아이들은 제대로 클 수 없다는 말인가? 이혼이나 사별로 한부모 가정이 된 경우는 그래도 아빠가 있으니 조금 더 낫다고? 가정의 형태마저 서열화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폭력적인 사고방식이 다음과 같은 정반대 입장의 또 다른 잘못된 댓글을 등장시킨다.
“형편없는 아빠랑 사는 것보다는 아예 아빠가 없는 편이 나을지도.”
“집 한칸도 없는 주제에 애 낳아봤자 애 고생만 시키는 거.”
“가난한 부모보다야 한쪽만 있어도 경제력 확실한 편이 낫지.”
아프고 슬프지 않은가? 일생일대의 고민 끝에 정자를 기증받아서라도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에게 잘 키울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말만큼은 하지 말자. 가정의 형태는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냥 집집마다 사는 모습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사유리에게 던지려던 돌, 그냥 내려놓으시길.
세상이 말세라는 한탄도 가끔 보이는데 그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세상이 망한다면 비혼 출산 때문이 아니라 환경오염이나 바이러스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정말로 세상이 걱정된다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떻게 줄일지 함께 고민해봅시다.”
20세기에 접어든 뒤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조차 여성은 투표할 자격이 없다며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 수십년 전만 해도 버스나 비행기 안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웠고, 2002년 월드컵을 치를 때도 토요일은 당연히 출근하는 날이었다. 물적 토대의 변화보다 상식과 제도의 변화는 느리다. 그래도 거스를 수는 없다. 동거도 결혼도 이혼도 출산도 더 쉽고 더 다양하고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도 세상은 안 망하고, 어쩌면 그래야 세상이 안 망한다.
<허수경의 가요풍경>을 아직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려나? 시그널 음악은 크리스 글래스필드라는 기타리스트의 ‘소프트 아이스’라는 곡이었다. 10여년 만에 들어본다. 스튜디오 안에서 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동자를 추억하며.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