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은 지금도 많은 사람의 인생 영화다. 잊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짐 캐리의 신들린 연기는 그를 <마스크> <덤 앤 더머>의 재미있는 코미디언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기억과 환각,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배우들의 감정을 시각화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력도 놀라웠다. 이 두 사람,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 감독이 드라마에서 다시 만났다. 그것만으로 무조건 봐야 하는 드라마 <키딩>이다. 국내에서는 토종 오티티 왓챠에서 볼 수 있다.
피클스 아저씨(짐 캐리)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슈퍼스타다. 유명 토크쇼에 초대되고 전국으로 생방송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행사의 주인공이다. 어린이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동심과 추억을 준다. 우리로 치면 뚝딱이 아저씨, 번개맨, 짜잔형을 합친 존재쯤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피클스 아저씨를 연기하는 제프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교통사고 이후 아내와 이혼 직전이며 남은 아들과는 소통이 어렵다. 삶이 망가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방송에서 슬픔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어차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판타지 동화가 아니라 잔혹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좌절된다. 온 가족이 매달린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은 이미 그 자체로 엄청난 사업이다. 제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네 안에는 두 사람이 있지. 한 사람은 1억1천만달러의 사업을 하는 피클스 아저씨, 또 다른 한 명은 제프. 별거 중인 남편이자 슬픔에 잠긴 아버지지. 이 둘은 절대 만나서는 안 돼. 그러면 둘 다 망가져.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은 제프일 뿐이다. 피클스는 멀쩡해.” 이제 피클스 아저씨의 세계와 제프의 세계는 끝없이 충돌한다. 사실 <키딩>에서는 어른들뿐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모두 조금씩 아프다. 마약, 성 정체성의 혼란, 매춘, 우울증, 심지어 암까지. 각자 이 모든 것을 숨기며 살고 있다. 그래서 <키딩>은 해맑은 포스터와 달리 ‘청소년 관람 불가’ 드라마다.
실제로 코미디언인 짐 캐리는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며 어린이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제프와 겹쳐 보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을 남긴 사람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삶을 판타지로 보이게 하는, 혹은 반대로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보다 보면 드라마 속 어린이 프로그램인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의 모든 요소가 결국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제프가 자기 얼굴을 한 인형을 직접 써보는 장면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옷으로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을 안아보는 어른들의 모습은 아무 대사 없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키딩>이 엄청나게 심각한 내용은 아니다. 그 속에는 촘촘하게 웃음이 담겨 있다. 인생과는 반대로 <키딩>은 전체적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희극이다. <키딩>을 보고 나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장면이 큰 웃음을 안겼던 <개그콘서트>(한국방송2) ‘분장실의 강선생’이 그냥 코미디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키딩>이 집을 나서는 순간, 아니 내 방문을 나서는 순간, 지금 내 모습, 지금 내 감정과 다른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마주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020년의 끝자락이다. 이 세상 사람들의 우울과 서글픔의 총합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올해는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한 해가 아닐까? 모든 걸 숫자로 바꾸고 싶어하는 학자들이 왜 이런 건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코로나와 싸우며 2020년의 비극을 견뎌낸 당신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핀란드에서 출발한 산타가 2주 격리로 내년에나 온다는 이번 연말엔 <키딩>이 적당하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