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해체 수리와 보존처리 작업을 벌여 원래 형태를 되찾게 된 지광국사탑의 상륜부 옥개석. 옥개석 위아래 절반에 가까운 부위를 차지했던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기존 돌 부재와 재질이 거의 같은 새 부재로 대체했다. 어두운 빛깔의 기존 석재와 밝은 빛을 띤 새 석재 부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5년 넘게 벌어진 대수술이 끝났다. 고려 시대 불탑의 최고 걸작으로 꼽혔지만, 20세기 탑을 뜯어간 일제의 침탈과 한국전쟁 당시의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원주 법천사 터 지광국사탑(국보)이 원래 제 모습을 되찾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부터 벌여온 지광국사 탑 보존처리 작업을 최근 끝냈다”고 20일 밝혔다. 센터 쪽은 보존처리와 함께 진행한 탑 부재 분석 결과를 담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 보존‧복원Ⅲ> 보고서도 펴내어 누리집에 공개했으며, 탑 관련 정보와 보존처리 내용을 담은 웹툰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광국사탑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 터에 세워졌던 고려시대 국사(國師:나라를 이끄는 최고 지위의 스님) 해린(海麟:984~1070)의 승탑이다. 승탑이란 덕이 높은 승려의 유골을 봉안한 무덤 성격의 시설로 부도라고도 한다. 화려한 조각, 뛰어나고 독특한 꾸밈새로 역대 가장 아름다운 불탑으로 꼽히지만, 근대기 무수한 수난을 당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 일본인에 의해 원주의 절터에서 서울로 뜯겨 옮겨진 이래 1912년 일본 오사카로 무단 반출됐다가 되돌아 왔고, 그 뒤 경복궁 경내 뜰에 설치되지만, 1990년대까지 최소 9차례 이전을 거듭하는 수난을 겪었다. 한국전쟁 당시엔 폭격을 받아 상부가 무너지는 등 근대기 가장 잦은 고난을 겪은 석조문화유산으로 유명하다.
탑 상부 부재중 일부인 앙화 부분. 파손돼 사라졌던 양 끝부분을 새 석재로 대체했다.
탑은 문화재청의 정기조사(2005, 2010년)와 특별 종합점검(2014년), 정밀안전진단(2015년)을 거치면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 철골을 넣어 시멘트 모르타르(mortar)로 복원한 부위가 심각하게 손상됐고 몸체 전면에 상당한 균열이 일어났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모르타르로 복원된 옥개석(지붕돌)과 탑 상부는 구조적 불안정 현상이 심해져 추가 훼손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에 2015년 문화재위원회가 심의를 벌여 전면 해체 뒤 보존 처리하는 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그 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 5월 경복궁 서남쪽 국립고궁박물관 근처에 있던 탑을 해체하고 부재를 대전 연구실로 옮겨 지금까지 보존 처리를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해체 부재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모르타르는 모두 걷어냈다. 결실돼 없어진 부재는 새로운 석재로 대체·보강했고, 파손 부재는 다시 붙였다. 연구센터 쪽은 “탑의 돌 부재들을 캔 산지(産地)를 과학적 기법으로 추적한 결과 탑 근처에 있는 원주시 귀래면 귀래리 돌산을 산지로 보고 원래 석재와 가장 유사한 재질의 화강석을 캐어 활용했다”고 밝혔다.
1911년 원주 법천사 터에서 뜯겨 서울 명동성당 부근의 일본인 병원 경내로 옮겨진 지광국사탑. 가장 오래된 탑 사진이다. 절터에 탑이 자리했을 때의 사진은 전하지 않는다.
탑 옥개석 남쪽 면 부분의 새 석재 부분 도상을 조각하는 작업 광경이다.
센터 쪽이 보존처리와 더불어 역점을 둔 것은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 사진과 실측도면 등을 바탕으로 원래 도상의 실체를 찾는 연구다. 기본적인 복원 잣대는 현재 남아있는 사진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1911년 당시 탑 이전 사진이다. 탑을 당시 서울 명동 일대의 무라카미 병원 앞에 옮겨놓고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경복궁 등에서 찍은 유리건판 사진을 대조해 탑 결실 부분의 제 모습을 찾아내고, 전통기술과 도구를 써서 새 부재를 가공하고 붙였다. 복원 때 사용될 무기질 결합재 연구 등도 진행했다.
5년간의 보존처리 작업을 통해 전체 29개 부재들 가운데 19개 부재에 새 석재가 보강됐다. 특히 1957년 수리 당시 조악하게 땜질했던 옥개석은 철근을 집어넣은 시멘트 모르타르를 걷어내고 절반에 가까운 부분을 새 돌 부재로 대체했다. 앙화, 보륜 등 파손이 심한 탑 상륜부 부재도 상당 부분을 새 석재로 대체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1957년 수리 당시 방위를 잘못 맞춰 복원된 옥개석의 일부 부재와 추녀 부재의 위치를 바로잡았고, 귀퉁이 바깥으로 뻗어 나온 우석도 후대 끊어졌던 부분을 이어붙였다. 탑 몸체 돌 사리 구멍에서 발견된 옥개석 파손 부재 조각과 2000년대 이후 절터에서 발굴된 하층 기단 갑석 조각도 끌어모아 과학적 조사와 고증을 거쳐 원래 위치에 복원했다. 함께 나온 보고서에는 2018~2019년 진행된 사업내용과 연구·복원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유사한 재질의 새 석재를 찾아 탑에 끼워 넣는 과정, 장엄 조각과 문양에 대한 연구, 특허기술을 활용한 구조보강 과정 등을 담았다.
수지로 보강 처리된 탑 몸체 파손부위의 미세 보정 작업 모습.
지난 2019년 6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으로 탑의 절터 이전은 확정됐지만, 경내 어느 지점에 놓을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2년 전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는 불탑이 있던 자리에 보호각을 씌워 복원하는 방안과 원주시가 절터에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에 탑과 탑비를 함께 옮겨 보존·전시하는 방안이 거론된 바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보존환경이 탑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해 최종 이전 지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