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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김현식 6집 유작음반…소름 끼친다, 혼의 기록들

등록 2021-01-22 17:27수정 2021-01-23 15:08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김현식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치자. 김광석과 김현식 중에 누굴 더 좋아하세요? 둘 다 좋아한다거나 둘 다 별로라는 대답은 제외하고 둘 중 한명을 굳이 골라야 한다면 누구인가? 어느 쪽이 더 많을지는 모르겠다. 추구했던 음악 장르는 달랐지만 둘은 공통점이 참 많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음색을 가졌고, 몇번 듣다 보면 결국 영혼까지 홀려버리는 호소력을 지녔고, 그래서 남녀노소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고, 그 사랑을 다 누리지 못하고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귀천했다는 점이 모두 똑같다. 두 가수에 대해선 몇권의 책을 써도 모자라겠으나 오늘은 김현식의 마지막 음반이자 유작인 6집 음반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는 1980년 ‘봄여름가을겨울’로 데뷔한 후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골목길’ ‘어둠 그 별빛’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등 이른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지닌 인기곡을 연이어 발표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술과 담배, 대마초 등등 건강을 좀먹는 것들을 끊어내지 못했고 너무나 사랑했던 후배 유재하가 겨우 25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유재하가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지 3년 후 1990년, 거짓말처럼 같은 날인 11월1일에 김현식도 눈을 감았다. 각혈하면서도 새 음반을 준비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내일은 녹음해야겠어요.”

임종하기 겨우 두시간 전에 김현식이 동아레코드 사장과 통화하면서 남긴 말이었다.

죽어가던 그 순간에도 완성하고 싶었던 마지막 음반은 꼭 30년 전 1991년 1월 말에 발매되었다. 예전에 발표되었던 노래들도 있고 리메이크곡들도 있고 건강 악화로 음색은 갈라지고 거칠어졌지만, 이 음반은 감히 음정과 박자, 완성도 따위로 평가할 수 없는 혼의 기록이다. 스스로 소멸의 의식을 치르면서도 운명을 거부하는 절규와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록곡을 듣고 있노라면, 아, 입은 마르고 눈은 젖어든다. 이런 경험을 보통 ‘압도당한다’고 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제일 먼저 녹음한 버전이 실려 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힘겹게 첫 녹음을 마치고 그 뒤에 몸 상태가 좋아질 때마다 몇번 더 불렀지만 첫 녹음보다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대로 음반에 실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곁에 머물러 달라고 이토록 애타게 노래해 놓고서 왜 정작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나버렸나요? 야속하고 또 야속하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신촌 블루스 3집에도 실렸던 곡 ‘이별의 종착역’ 또한 걸출하다. 나는 술에 취해 이 노래를 몇번이나 불러재꼈을까? 수십번? 백번? 원곡이 있는데 무려 1957년(!)에 손시향이라는 분이 불렀다. 기차역에서 호호 불어 마시는 커피 같은 원곡을 회한에 차서 들이켜는 독한 위스키로 만들어 버렸다. 술을 마시면 이 노래가 듣고 싶은 건지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술 생각이 나는 건지 고민할 필요 없다. 양쪽 다니까.

‘추억 만들기’는 작사·작곡가로서 김현식의 솜씨를 보여준다. 좋은 글이나 좋은 음식이 그러하듯이 좋은 음악 역시 담백해야 한다.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가장 담백한 이 노래는 어린 아들의 재롱을 보고 단숨에 썼다는 ‘변덕쟁이’처럼 노래와 노랫말이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아주 찰떡이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단계를 지나 체념하며 먹먹해지는 마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껴봤을 그 쓸쓸함을 음악으로 빚어냈다. 가사를 잠깐 보자.

‘새끼손가락 걸며 영원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그대를 사랑하며 잊어야 하는/ 내 마음 너무 아파요/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노래 제목인 ‘추억 만들기’는 1990년대 대학가에 매우 흔했던 술집의 이름이기도 하고 김현식의 30주기를 기념해 지난해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의 제목이기도 하다. 알리, 이석훈, 다비치, 선우정아, 규현, 하림 등 만만치 않은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노래 중에 개인적으로는 김재환의 리메이크 ‘봄여름가을겨울’이 제일 좋더라. 며칠 전에 나온 백아연의 ‘변덕쟁이’도 꼭 들어보시길.

6집 음반의 또 다른 수록곡 ‘겨울 바다’는 ‘사랑과 평화’의 원곡을 다시 부른 노래다. 김현식을 꽤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서도 이 노래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꼭 들어보시라. 파도치는 연주 위로 그의 목소리가 눈보라처럼 휘날린다. 이 노래를 지그시 눈을 감고 듣는 일은 며칠 남지 않은 1월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체험 중 하나다. 지금 막 해봐서 잘 안다.

이번 칼럼을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누가 필자에게 김광석과 김현식 중에 누굴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혹은 김현식의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뭐냐고 묻는다면? 이번 칼럼에 주르륵 나온 노래 중에는 필자의 최애곡이 없는데….

다음 칼럼에서 대답하도록 하겠다. 무려 김광석과 김현식이라는 이름을 꺼내놓고 달랑 한회에 끝내리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죠?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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