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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낮에는 김광석, 밤에는 김현식

등록 2021-02-06 04:59수정 2021-02-06 10:01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김광석. <한겨레> 자료 사진
김광석.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 회에 던진 질문부터 답해야겠지. 김광석과 김현식 중에 누가 더 좋냐는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이렇다. 낮에는 김광석, 밤에는 김현식. 이렇게 표현해도 무방하겠다. 맨정신일 때는 김광석, 술에 취하면 김현식.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바보 같은 질문에 대한 바보 같은 답이다.

인공지능(AI·에이아이) 기술의 발달로 고인이 된 가수들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연말 케이블 채널 엠넷 프로그램인 <다시 한번>에서 박진영의 노래 ‘너의 뒤에서’를 인공지능 기술로 만들어낸 김현식의 목소리로 부르는 무대를 선보인 것이다. 이 노래를 만든 작곡가 김형석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무대 위로 김현식의 홀로그램 영상도 등장했다. 아마 전후 사정을 숨긴 채 필자에게 소리만 들려줬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을 테지. “김현식의 노래는 한 곡도 안 빼놓고 다 찾아 들은 줄 알았는데, 우와 박진영보다 이 노래를 먼저 녹음해놓은 음원이 있는 줄은 몰랐네.”

김현식에 이어 당연한 듯 김광석의 무대도 다른 방송사에서 이어졌다. 에스비에스(SBS) 신년특집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 에이아이 대 인간>에서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목소리가 인공지능으로 복원돼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가수들을 팬들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논란도 이어졌다. 잊힐 권리와 같은 맥락으로, 당사자들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의 일부를 멋대로 되살려도 괜찮으냐는 것이다.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가수로 살았던 그들 삶의 연장선상에서, 고인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과 유족들의 동의를 구한다는 조건하에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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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김현식 20주년 다큐멘터리 속 모습. H6s<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 칼럼에서 던져놓고 대답은 회피했던 질문 하나 더. 김현식 노래 중 필자가 가장 아끼는 곡은? 2집 음반에 수록된 ‘어둠 그 별빛’이다. 그가 직접 작곡한 이 노래는 그야말로 웅장하고 비장하다. 가사도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 이를테면 피투성이가 된 채 전장에 쓰러진 기사가 만날 수 없는 공주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둠은 당신의 숨소리처럼 / 가만히 다가와 나를 감싸고

별빛은 어둠을 뚫고 내려와 / 무거운 내 마음 투명하게 해

(중략)

땅 위의 모든 것 깊이 잠들고 / 아하 그 어둠 그 별빛

그댈 향한 내 그리움 달래어주네 / 꿈속에서 느꼈던 그대 손길처럼’

그의 다른 곡들처럼 여러 후배 가수가 이 장엄한 록오페라를 다시 불렀다. 김경호, 적우, 정동하, 이승환 등. 필자는 박완규 버전, 그중에서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무대를 가장 좋아한다. 수많은 ‘김현식 다시 부르기’ 중에서 원곡의 감동에 비견할 만했던 경우는 이 버전이 유일했다. 고인의 절친한 후배이자 함께 활동했던 가수 권인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부른 영상도 재미있게 볼 만하다. 동네 아저씨 차림으로 녹음실에 들어가서 물을 홀짝이며 원테이크로 이 어려운 노래를 불러버린다. 그렇게 좋아하던 현식이 형의 절창을 30년 만에 되살리는 기분이 어땠을지.

블루스 록 아티스트 중에서 눈에 띄는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공식 누리집 갈무리
블루스 록 아티스트 중에서 눈에 띄는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공식 누리집 갈무리

필자가 원작 소설과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도 김광석과 김현식이 등장한다. 여주인공인 걸그룹 출신 디제이(이민정)가 김현식과 김광석을 헷갈리게 소개하자 남주인공인 담당 피디(이정진)가 버럭 화를 낸다. 신성한 가치가 더럽혀졌을 때 발생하는 반사적인 분노다. 영화 속 피디에게도 현실 세계의 피디인 나에게도 김광석과 김현식은 단순한 가수 이름이 아니라, 대형기획사 중심으로 획일화되어가는 가요계 흐름 속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할 영감과 혼의 상징이니까.

김광석은 없지만 그의 영감과 혼을 이어가는 후예들은 여럿 보인다. 장범준, 김필, 장재인, 재주소년…. 검정치마나 아이유의 음악에서도 김광석의 영향은 종종 두드러진다. 그런데 김현식의 후계자, 특히 블루스 록 아티스트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물론 블루스는 록, 아르앤비(R&B), 힙합 등 여러 장르에 이식된 기본 형질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원치 않아도 블루스 음악을 듣고 있는 셈이긴 하지만, 좁은 의미로 한정하자면 입지가 확 줄어든 게 사실.

이재익 피디
이재익 피디

그래서 기가 막힌 블루스 아티스트를 추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몇년 전 이 자리에서 신인 밴드로 소개했던 빌리카터가 대견하게도 쑥 자라주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늘은 ‘최항석과 부기몬스터’를 소개한다. 추천곡은 ‘난 뚱뚱해’. 김현식 형님이 살아 계셨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면 껄껄 웃으며 좋아했을 거다. 최항석에게 연락해서 ‘너 이 녀석, 블루스 좀 하는구나. 나랑 술 한잔하지 않을 텐가?’ 했을 텐데. 아쉬운 대로 저랑 한잔하실래요?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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