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제이티비시)은 형사물의 외양을 띤 심리스릴러이다.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훨씬 구도가 복잡하다. 과거 사건과 현재를 겹쳐놓는 촘촘한 극본은 물론이고, 긴장감 있는 연출과 촬영이 압권이다. 최백호의 음색을 비롯한 배경음악도 독특한 감흥을 일으킨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기다. 광기와 억울함을 오가는 신하균의 연기와 반듯한 겉모습 속에 흔들리는 내면을 드러내는 여진구의 연기가 조화롭다. 최대훈, 최성은, 김신록, 이규회 등 조연들까지 모두 호연이다.
<괴물>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모호함’이다. 4회가 방송된 지금까지 주인공 이동식의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 그는 또라이처럼 보이지만, 법규를 정확히 아는 유능한 경찰이자 주민을 위해 사려 깊은 대처를 하는 경찰이다. 첫 갈대밭 장면은 언뜻 보면 토착 경사와 엘리트 경위의 기 싸움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메라의 움직임과 배경음악은 훨씬 강렬한 모호함이 서려 있음을 암시한다. 과연 모호함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동식은 용의자이자 피해자 가족이고, 최초 발견자이자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동식의 비밀을 캐기 위해 내려온 한주원 역시 비밀을 품고 있다. 갈대밭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시신을 앞에 둔 이동식과 한주원의 대화는 너무나 이상하다. 이는 한주원이 함정수사를 하다가 희생자를 만들었고, 그 비밀을 이동식이 알아챘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드라마는 이런 사실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절묘한 긴장을 이어간다. 드라마는 이동식과 한주원의 샅바 싸움을 펼쳐 보이는 동시에, 시청자와의 밀고 당기는 두뇌게임을 벌인다. 복선과 교차편집과 매회 충격적인 엔딩 장면을 통해 드라마는 시청자의 추리를 흔들어놓는다. 그 결과 이동식, 박정제, 오지훈 등 용의자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주인공을 믿을 수 없는 심리스릴러이자, 시청자를 극심한 혼돈에 빠뜨리는 추리극으로서 장르적 쾌감이 상당하다.
모호함이라는 키워드는 드라마가 실종과 시체 없는 살인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잘 어울린다. 드라마는 실종 신고하러 온 남자와 티브이(TV) 속 내연녀 실종 사건 뉴스를 복선으로 활용하며, 실종의 모호함을 잘 보여준다. 현행법상 실종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가출자’로 간주된다. 끝내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도 많지만, 찾는 가족이 없거나 불법체류 신분이면 실종으로 집계되지도 않는다. 이들은 설사 살해당했다 해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거나 신원 불상의 시신으로 나오면 수사되지도 않는다. 수많은 미제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실종자의 가족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끔찍한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잘린 손가락만 남기고 사라진 딸을 기다리다가 아버지는 얼어 죽고, 어머니는 쓰러져 산송장이 되었다. 또 다른 실종자의 딸 재이는 엄마가 사라진 뒤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지박령처럼 살아간다.
드라마의 공간적인 배경도 모호함과 잘 맞는다. 갈대밭은 아름답지만, 그 안은 진창이고,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폐회로텔레비전(CCTV)도 없고, 고라니 우는 소리만 괴괴한 그곳의 암매장된 주검은 꽤 잘 어울린다. 여기에 개발을 앞둔 수도권 도농복합도시라는 설정도 그럴듯하다. 인맥과 소문이 지배하는 전근대적 농촌 사회의 폐쇄성과 개발에 대한 자본주의의 욕망이 뒤엉켜 있다. 저 멀리 신도시가 들어서고, 근처에 산업단지를 유치했다는 펼침막이 걸리고, 20년 만에 재개발 호재를 앞둔 ‘문주시 만양읍’. 20년에 걸쳐 사람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지역 정치인을 비롯한 주민들의 관심은 개발 계획이 무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쏠려 있다.
드라마는 모호함을 단지 분위기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탐구한다. 드라마는 의심과 확신을 주제로 삼는다. 이동식은 20년 전 살인 혐의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밝혀진 인물이다. 그는 살인자이거나 무고한 자이다. 한주원은 이동식이 살인자라는 확증편향에 빠져든다. 한편 실종자의 아버지 진묵은 그의 무고함을 확신한다. 친구인 오 경위는 의심 속에서 오락가락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밥집 할매의 반응이다. 할매는 이동식이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의 범인이라며 “너 때문에 개발이 안 되게 생겼다”고 소금을 뿌린다. 그런데 정말로 그가 살인자라고 믿는다면 겁에 질려 피하지 않았을까. 이는 그가 살인자는 아니라고 믿지만, ‘어쨌든 살인과 연루된 자’이기에 나의 불안을 너에게 투사하겠다는 뜻 아닌가.
세상에는 살인자이거나 무고한 자라는 두 개의 이성적 범주만 있는 게 아니다. ‘어쨌든 연루된 자’라는 무의식적 범주가 존재한다. 도덕적 판단과 무관하게 ‘불길한 존재’라는 회색의 범주 안에는 용의자나 범인의 주변인은 물론이고 때로는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도 포함된다. 실종자 가족으로 일생 수군거림 속에서 살아온 재이가 이동식을 범인으로 몬 한주원에게 계란을 투척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는 피해자를 난도질하는 언론을 보고 이동식이 미친 듯이 웃는 장면과 더불어 ‘불길한 존재’로 낙인찍힌 이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의심은 확신만큼이나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결속력과 힘을 발휘한다’는 영화 <다우트>의 대사처럼, 불길함은 어떤 죄목보다 더 강하고 지속 가능한 추방의 근거가 된다. 모호함과 불안을 견딜 수 없기에 불길한 자를 추방하여, 끊을 수 없는 의심의 긴장에서 놓여나려는 공동체의 손쉬운 선택이다.
형사물의 구도 안에 심리스릴러의 요소는 물론, 사회심리극의 그림자까지 강하게 드리우다니, 결말이 기대되는 수작이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