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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라우디스트 보이스’…TV쇼 정치 달인의 흥망성쇠

등록 2021-04-02 17:11수정 2021-04-03 02:33

[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미국 보수 언론인 로저 에일스는 보도 채널 <폭스 뉴스>를 설립하고 압도적인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했지만 성추행 가해 사실이 밝혀지며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과 몇년 전의 사건을 실존 인물 실명 그대로를 사용해 만든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미국 프리미엄 케이블 채널 <쇼타임>에서 2019년 방송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오티티·OTT)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라우디스트 보이스>다.

드라마는 2017년 에일스가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과 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안다. 우파, 편집증, 뚱보.” 그러고는 1995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너도나도 케이블 뉴스 사업으로 뛰어들던 때다. <시엔엔>(CNN)은 일찌감치 앞서나가 있었고, 미국 최대 방송사 <엔비시>(NBC)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작하여 <엠에스엔비시>(MSNBC)를 설립한다. 디즈니도 케이블 뉴스 채널에 뛰어든다. 거대 자본들이 오티티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도 새로운 뉴스 케이블을 시작하는데, 그 작업을 에일스가 진두지휘한다. 그의 전략은 단순하다. 뉴스도 결국 티브이(TV)쇼다. 그러니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주면 된다. 에일스는 이렇게 말한다. “케이블에서 중요한 것은 틈새야. 열정적인 소수의 충성. 지금의 미디어는 전부 진보지. 우리는 반대편에 있는 절반의 시청자에게만 집중하면 돼.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은 우리 채널을 고정할 거야. 정치에서는 이런 걸 지지층 결집이라고 하지.”

출발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에일스는 점점 더 극단적인 논조를 펼친다. 9·11 테러와 오바마의 당선을 보면서 ‘적’들을 애매모호하게 표현하지 말고 구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애국이라고 말한다. 빌딩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이라크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한다. 버락 오바마를 칭할 때는 꼭 미들 네임을 사용하여 ‘버락 후세인 오바마’로 부른다. 오바마에게 사회주의자, 아프리카인, 이슬람이라며 맹공을 퍼붓지만, 그의 재선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앞으로의 후보는 내가 고를 거야. 이길 인간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에일스는 트럼프에게 최후의 도박을 건다. 실제 에일스는 공화당의 미디어 자문을 오랜 기간 했고, 닉슨, 부시, 트럼프 당선에 직접 개입했다. 이쯤 되면 그가 언론인인지 정치인인지 헷갈린다. 무서운 것은 그는 정치를 티브이쇼로 만드는 데만 재능이 있는 게 아니고 티브이쇼로 정치를 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족과 종교 같은 미국적 가치를 최우선에 둔다는 이 막강한 극우 언론인을 몰락시킨 것은 역설적이게도 성추문이다. 그는 수많은 직원에게 권력형 성폭력을 저질렀고, 여성 진행자 칼슨의 폭로가 시작된 후 수많은 미투 증언이 잇따랐다. 끝없이 직원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암시를 주입하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드라마는 거대담론이 난무하는 뉴욕 사무실과 에일스가 사는 개리슨이라는 작은 동네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마을의 작은 신문사를 인수해서 폭스와 같은 방식으로 극우적 논리를 전파한다. 또한 자신의 부동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문사를 활용한다. 이로 인해 아름다운 작은 마을 역시 극단적으로 분열된다.

추악한 성폭력과 그에 대한 시원한 반격이 끝난 뒤 쫓겨난 에일스는 집에서 <폭스 뉴스>를 흐뭇하게 시청한다. 바로 트럼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이다. 점점 혐오와 차별이 노골화되고 있는 지금의 미국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암시한다.

주인공인 로저 에일스 역은 러셀 크로가 맡았다. 드라마를 다 볼 때까지 이 사람이 러셀 크로인지 몰랐다. 고집불통이며 탐욕스럽고, 무엇보다 150㎏은 족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에일스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호랑이와 싸우던 검투사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명연기를 선보인다. 러셀 크로는 이 드라마로 그해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니콜 키드먼, 샤를리즈 테론, 마고 로비가 주연한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에일스의 성추문 사건을 폭로자의 입장에서 다룬다. 드라마를 본 뒤 영화를 보면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렇다면 에일스가 사라진 지금의 <폭스 뉴스>는 어떨까? 여전히 극우적인 논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부정 선거 주장과는 선을 그었다. 극단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제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로 옮겨가고 있다. 트럼프가 낙선해도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 현상이 계속되듯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언제든지 제2의 에일스가 등장할 수 있다.

권력형 성폭력과 티브이쇼 같은 이미지 정치, 자신의 편을 모으는 일에만 집중하는 미디어와 차별과 혐오에 환호하는 유권자. 이런 것들이 과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만의 현상일까. 그러니 투표소로 가기 전, 이 드라마를 보기를 추천한다. 당신이 어느 쪽이든 좀 더 고민한 한 표가 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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