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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그날의 진실, 친구와 ‘썰 풀듯’ 하는데 역사가 보이네

등록 2021-04-16 17:39수정 2021-04-17 02:31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에스비에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에스비에스·꼬꼬무)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평일 심야시간대 교양물로 시청률이 5%를 넘는다. 유튜브 조회수도 높은데, 특히 2030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점이 놀랍다.

<꼬꼬무>는 2020년 6월에 <에스비에스 스페셜>에서 맛보기(파일럿) 형식으로 첫 방송 되었다. 3회의 파일럿 방송을 거쳐 9월에 정규편성되어 10회차가 방송되었다. 수지 킴 간첩 조작 사건으로 시작된 시즌1이 오대양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지난 3월에는 시즌2가 몸집을 키워 돌아왔다. 총 20편으로 편성된 시즌2는 12·12 사건과 실미도 사건으로 포문을 열었다. 시즌1이 <궁금한 이야기 와이(Y)>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룰 법한 사건들을 위주로 하였으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다룰 법한 사건들로 체급을 키운 것이다.

<꼬꼬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전달 방식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고, 강연이나 집단 토크쇼를 기획할 수도 있다. <꼬꼬무>는 가장 간단한 형식을 택한다. 친한 사이에서 ‘썰’을 풀 듯, 1:1 대화로 전하는 것이다. 카페나 응접실 같은 편한 공간을 재현한 세트에, 방송에서 금기시되었던 반말투로 눈을 맞추고 대화를 풀어낸다. 이런 형식은 이점이 많다. 첫째는,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훨씬 적게 든다. 특히 코로나로 여러 명이 대규모 작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최적이다. 둘째는,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온라인 강의나 대규모 강연은 지루해도 개인 과외나 친구와의 수다는 몰입되지 않던가. 오직 한 사람인 나에게 하는 이야기니만큼 몰입도가 높다.

만들기가 쉽진 않다. 작가와 화자와 연출의 역량이 중요하다. 작가는 취재를 통해 자료를 충분히 모으되, 이를 가장 간명한 스토리텔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작업했던 제작진은 탐사와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특화된 능력을 지닌다. 화자의 전달력도 좋아야 한다. 내용을 완전히 숙지한 상태에서 능숙한 구어체 입담으로 쥐락펴락해야 한다.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은 특유의 입담과 순간적인 연기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며 청자를 몰입시킨다. 또한 연출자는 구성, 촬영, 편집에 노련해야 한다. 당시 자료 화면이나 재연 장면, 관련자 인터뷰 등을 첨가하되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최소화해야 한다. 손님에 해당하는 청자의 활용도 중요하다. 시청자는 1:1 대화에 빠져든 청자의 위치에 놓이며, 청자의 교감과 반응이 곧 시청자의 몰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로즈업 등을 활용하여 청자와 정서적 동일시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스튜디오 안에서 1:1 대화를 계속 이어가면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3쌍의 화자와 청자를 두고 빠르게 교차편집하여, 지루할 짬을 주지 않는다.

최근 <꼬꼬무> 외에도 이야기를 중심에 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심야괴담회> <알쓸범잡>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한 전달은 대단히 전통적인 것이자 한편으론 최신 매체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나 <천일야화>에서 보듯이, 이야기는 서사물의 원형이다. 이야기꾼의 전통은 길거리의 전기수, 강담사를 거쳐 변사나 라디오극장을 통해 면면히 이어졌다. 한편 최근의 팟케스트, 유튜브, 개인방송도 이야기의 가치를 높였다. 화려한 시청각 자료 없이도 콘텐츠만 탄탄하면 방구석에서 ‘썰’을 푸는 능력만으로 얼마든지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꼬꼬무>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1인 방송화된 매체 환경의 변화를 지상파 프로그램이 흡수한 사례이기도 하다. 20세기 방송이 ‘1:다’의 일방적이고 집단적인 전달 방식이라면, 21세기 방송은 ‘1:1’의 쌍방향적인 속성을 보충하려 한다. <꼬꼬무>가 3쌍의 1:1 대화를 교차편집으로 섞어놓은 것도 ‘1:1’적인 소통을 재현하려는 모양새로 보인다.

<꼬꼬무>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사 사건들을 거대서사가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도 참신하고, 사건이 현재의 나와 너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음미하는 것도 뜻깊다. 얼마 전까지 드높았던 설민석의 인기나 <조선구마사> 종영운동에서 보듯이, 현재 역사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그러나 역사를 둘러싼 논의가 쓸데없이 비장하거나 강박적인 측면이 있다. 민족사를 중심에 두고 역사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만들거나, 고증과 실증에 집착하며 역사를 ‘덕후들’의 영역으로 만드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의 대문자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미시사의 영역이 존재하며 그것이 현재의 나와 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꼬꼬무>가 박흥숙 사건을 박흥숙 개인을 중심으로 풀어내다가, 빈민운동의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와 철거민들의 역사를 돌아본 것은 놀랍다. 또한 박인수 사건을 다루면서 가부장적인 재판기록을 공개하며 변화된 젠더 의식을 뒤돌아보는 것도 놀랍다. 이는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으로 전유하려는 시도와 사뭇 다른 것이다.

“20대는 역사에 대한 경험치가 낮다”고 말한 정치인이 가리킨 ‘역사’는 무엇일까. 50대가 박제한 거대서사일 뿐, 20대가 체감할 만한 서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사도 결국 이야기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눈을 맞댄 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풀어내야 할.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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