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영의 <시카고>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불륜남을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에 갇히고 나서 스타가 되길 꿈꾸는 코러스 걸 록시 하트.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짙은 빨간 립스틱에 검은 재킷 차림의 티파니 영은 영락없는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 하트의 모습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감정과 야망에 눈을 뜨는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록시가 선택한 순간순간에 일어나는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오디션에서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록시 하트 역을 따낸 티파니는 이런 각오를 밝혔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시카고>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사회, 자극적인 것을 좇는 미디어와 대중을 경쾌하게 비판하는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초연한 이후, 지난 2일부터 오는 7월18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21주년 기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티파니는 오디션에 앞서 록시 하트에 푹 빠져 살았다고 했다. “춤과 대사를 미리 외운 건 물론, 매일 빨간 립스틱에 점을 찍고 망사 스타킹을 신고 ‘내가 록시 하트다’라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오디션에 떨어져도 후회 없을 정도로 모든 걸 쏟아 준비했죠.”
그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건 2011년 <페임>에서 스타를 꿈꾸는 여학생 카르멘 디아스 역을 맡은 뒤로 꼭 10년 만이다. “<페임>은 20대 초반의 도전이었고, <시카고>는 30대 들어 처음 도전하는 작품이에요. 10년 전보다 더 단단해져서 캐릭터와 스토리에 더 강한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연습할 때 너무 힘들어 울었다고 했다. 걸그룹 소녀시대로 데뷔하기 전 연습생 시절보다 더 힘들었단다. “연습생 때는 노래, 춤 등 다양한 트레이닝을 받는 게 힘들었는데, <시카고>는 명확하게 정해진 항목들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어린 나이, 어린 감성으론 소화할 수 없는 연습량과 텍스트죠. 모든 면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이에요.”
티파니는 소녀시대 시절 ‘연습벌레’로 통했다.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 지금도 그 별명은 변치 않았다. “보통 연습은 저녁 6~7시에 끝나지만, 남아서 밤 9~10시까지 더 해요. 일요일 빼고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록시 근무 타임’이라고 생각하며 연습해요.”
도전하고 싶은 뮤지컬 배역으로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위키드>의 글린다를 꼽았다. 재미동포로 영어가 더 편한 그는 미국 브로드웨이 오디션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 <물랭 루즈>의 새틴 역을 좋아한단다.
앞으로의 꿈은 뭘까? “티파니가 선택한 음악과 작품이 기대되고, 멋진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뮤지션이 되는 게 바람입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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