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빌레라> 심덕출의 꿈이었던 <백조의 호수>.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이제 와서 발레가 왜 하고 싶은 거예요?” 20대 이채록(송강)이 70대 심덕출(박인환)에게 물었다. “안 이뤄질 건 아는데, 그래도 한번쯤은 무대에 오르고 싶어. <백조의 호수>로.” 덕출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간 러시아에서 우연히 춤추는 남자 무용수를 보고 발레에 빠졌다. 그 무용수가 연기하던 배역이 <백조의 호수> 속 ‘지크프리트 왕자’였다.
지난달 27일 끝난 드라마 <나빌레라>(tvN)는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한 덕출이 열렬히 소망했던 일조차 잊기 전에, 오랜 꿈인 발레에 도전하는 내용으로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흔살 덕출의 도전. “다 늦게 무슨 춤바람이냐”는 가족의 타박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덕출이 마침내 무대에 서는 마지막 장면은 “누구나 날아오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덕출의 ‘진심’은 우리에게 용기도 줬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당신을 가슴 뛰게 한 것에 도전해보라”고.
아직까지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든 게 없다면? 괜찮다. 이제라도 찾아보면 된다. 덕출이 반한 발레가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무대로 달려가보자. 어쩌면 당신이 현실의 덕출일 수도 있을 테니. 때마침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채록과 덕출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 두 작품이 곧 무대에 오른다.
덕출의 가슴에서 평생 춤추던 <백조의 호수>는 오는 14~15일 군포를 시작으로 안성(7월1~2일), 제주(7월9~10일), 인천(7월16~17일), 익산(7월23~24일), 포항(7월30~31일), 세종(10월2일) 등을 찾아간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해설이 함께하는 <백조의 호수>’란 문패의 발레 투어다. 1984년 설립된 유니버설발레단은 2008년께 한국 발레단으로는 처음으로 공연 전 발레 감상법 해설, 공연 중 실시간 자막 제공 등 발레를 쉽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해왔다. 이번 공연에도 해설을 곁들이며 덕출이 느꼈을 지크프리트 왕자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한다.
<백조의 호수>는 전세계 발레 팬의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낮에는 백조로 변하는 마법에 걸린 공주 오데트와 그를 구하려는 왕자 지크프리트의 사랑 이야기다. 보통 1인2역인 가련한 백조 오데트와 욕망의 흑조 오딜이 더 주목받았지만, 드라마 <나빌레라> 이후 지크프리트 왕자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쪽은 “지크프리트는 난도 높은 동작들을 다수 소화해야 한다. 연기력과 기술 등 실력과 매력을 모두 겸비하며 고뇌도 섬세하게 잘 표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실 세계에선 마린스키발레단 김기민, 국립발레단 이재우·허서명, 유니버설발레단 강민우 등이 덕출의 꿈을 대신 이뤘다.
이채록이 빠져들었던 발레 <돈키호테>.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채록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지금의 스승 승주의 <돈키호테>를 보고 발레에 스며들었다. 스페인의 정열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희극 발레다. 채록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유니버설발레단이 6월4~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돈키호테> 무대에 가보자. 세르반테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작품은 가난하지만 재치 있는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딸 키트리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뒀다. 전개가 빠르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이 웃음을 유발해 로맨틱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투우사와 집시들의 춤, 고난도 테크닉으로 구성된 그랑 파드되(두 사람이 추는 춤)까지 스페인풍의 멋진 춤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드라마 1회에서 채록이 반복 연습하던 장면은 <돈키호테> 남자 주인공 바질의 솔로 대목이다.
채록이 입단하고 싶었던 곳은 국립발레단이다. 아쉽게도 국립발레단은 올해 <돈키호테>와 <백조의 호수> 공연을 하지 않는다. 1회에서 채록은 출소하는 아빠를 만나러 가느라 국립발레단 오디션을 포기한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극 중 채록의 실력이라면 합격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실제 덕출이 지크프리트 왕자를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남자 무용수의 은퇴 시점이 30대 중반~40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쪽은 “지크프리트 왕자는 점프도 많고 상대 무용수도 들어 올려야 해, 현실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덕출이 꿈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실제로 1967년생인 이원국 무용수가 여전히 남자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 이 말을 새겨듣자. “널 믿고 한번 해봐!”(덕출)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