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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민주화 열망·아픔 온몸으로 껴안아준 ‘우리 춤꾼’ 나래 접다

등록 2021-05-10 22:16수정 2021-05-12 10:13

이애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 별세
지난해 10월 말기암 진단받고 투병

5살때 시작…1970년대 민중문화운동
87년 박종철·이한열 장례 ‘바람맞이춤’
96년 ‘승무’ 인간문화재…서울대 교수
2013년 정년 ‘이애주류 태평춤’ 이뤄
이애주 교수가 서울대 정년퇴임을 앞둔 2012년 12월 경기 과천 갈현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애주 교수가 서울대 정년퇴임을 앞둔 2012년 12월 경기 과천 갈현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980년대 ‘바람맞이’ 춤으로 민주화의 열망과 시대의 아픔까지 온몸으로 껴안았던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이 10일 오후 5시20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

고인은 지난해 10월 말기암 진단을 받은 뒤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유치원 때부터 춤에 소질을 보였다. 5살 때 춤을 시작해 1954년 김보남 선생, 1970년 한영숙 선생을 사사하며 ‘춤꾼’의 길을 걸었다. 승무에서 검무까지 익힌 고인은 학창시절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가 됐다. 1982년부터 모교 서울대 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2013년 정년퇴직했다.

1987년 7월9일 연세대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한풀이춤을 펼치고 있는 고 이애주 교수. 고명진 사진기자 제공
1987년 7월9일 연세대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한풀이춤을 펼치고 있는 고 이애주 교수. 고명진 사진기자 제공

2017년 1월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제’에서 올린 ‘진혼굿’이 고 이애주 교수의 마지막 공식 무대가 됐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7년 1월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제’에서 올린 ‘진혼굿’이 고 이애주 교수의 마지막 공식 무대가 됐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고인은 1970년대 대학가 민중문화운동의 첫 세대다. 일제 용어인 ‘무용’보다 ‘춤’을 사용했고, 춤 공연에서 ‘판’ ‘마당’ 등의 말을 처음 썼다. 김민기·김석만·이상우 등이 활약한 연우무대의 1987년 이전 개관 공연에서 이광수·김덕수 등의 사물놀이 연주에 맞춰 ‘바람맞이’ 춤을 췄다. 그때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춤을 춘 것이 민주화 집회 현장으로 이어져 그는 ‘시국 춤꾼’으로 자리매김됐다.

그는 1987년 7월9일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장에서도 ‘한풀이춤’을 펼쳤다. 망자의 원혼을 달래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는 의식으로, 흰 광목을 찢어내는 장렬한 묘사는 앞서 박종철 열사의 ‘한풀이굿’에서 선보여 많은 이들을 울렸다.

고인은 교수 정년퇴직을 앞두고 2012년 12월3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바람맞이’ 춤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1987년 1월 춤패 신을 문 닫고 몸도 아파 겨우내 끙끙 앓고 있었는데 ‘박종철군 고문치사’ 소식이 들려왔다. 소름이 쫙 끼치고 무서웠다. 아, 이런 느낌, 이런 한을 나는 어떻게 내 춤에 담을까? 그때 김민기·김석만 등이 연우무대 대학로 이전 기념 공연을 해달래. 나도 막 속이 뒤틀리던 때라 흔쾌히 승낙했지. 그때 만든 게 ‘바람맞이’야.”

고인은 1987년 대선 때 ‘민중후보 백기완의 발자취’를 정리한 <가자 민중의 시대로>를 집필하는 등 고 백기완 선생과 평생토록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2014년에는 백 선생이 1988년 ‘바람맞이’ 춤판의 사진에 자신의 글을 엮어 만들었던 ‘이애주 한판춤 그림책’을 26년 만에 찾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고구려 벽화의 춤에서 우리 춤의 원형을 발견하고 연구에 몰두해 ‘영가무도’(김항이 주창한 정역 사상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수행법)를 익히기도 했다. 이로써 그는 2013년 정년 기념 ‘이애주류 태평춤’ 공연에서는 살풀이, 승무, 태평무 등 전통춤의 형식과 기교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자연 춤’의 세계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받은 고 이애주 이사장. &lt;한겨레&gt; 자료사진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받은 고 이애주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고인은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춤회 예술감독, 한영숙춤보존회 회장 등을 지낸 뒤 2019년 경기문화의전당 이사장에 이어 2020년부터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을 맡아왔다. 2003년 만해대상(예술부문), 2013년 옥조근정훈장 대통령상, 2017년 제7회 박헌봉 국악상, 2019년 ‘제1회 대한민국 전통춤 4대명무 한영숙상’ 등을 수상했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10일 통화에서 “고인은 사회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온몸으로 독재에 맞선 춤꾼이었다”며 “영원한 춤꾼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유족으로는 동생 이애경(한국무용가)씨와 제부 임진택(창작판소리 명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3일 오전이다. (02)2072-2010.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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