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7일 수원 경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꼭 50년 전인 1971년 6월30일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엄혹하고 암혹한 군사독재 시절 많은 이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 ‘아침이슬’ 50돌을 기념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헌(59)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지난 7일 경기도 수원 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시대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워낙 중요한 일이어서) 지난해부터 아무도 모르게 준비해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침이슬’은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포크송으로, 양희은의 가수 데뷔 곡이었다. 엄혹한 군사 독재를 은유하는 듯한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1975년 금지곡이 된 뒤 5공화국 시절까지 금지곡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물결과 함께 저항가요의 대표곡으로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 시발점이 된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거리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졌던 노래가 ‘애국가’와 ‘아침이슬’인데, ‘애국가’는 누구나 마음 놓고 불렀지만 ‘아침이슬’은 그러지 못했다”며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아침이슬’이 나온 지 5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부모 세대와 20대 젊은 세대가 공감하고 마음 놓고 함께 부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사업 추진의 취지를 밝혔다.
먼저 후배 가수들이 참여하는 ‘아침이슬’ 50주년 김민기 헌정 앨범을 6월 중순 선보인다. 헌정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가수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쟁쟁한 가수들이 참여한다고만 살짝 귀띔했다. 지상파 방송에서 ‘아침이슬’ 50주년 특집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김민기가 2015년 3월24일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인근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또 ‘백구’ ‘작은 연못’ 등 맑고 아름다운 노랫말로 생명의 가치를 전하는 김민기의 동요를 앨범으로 만드는 계획과 화가, 조각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이 참여해 미대 출신인 김민기와 ‘아침이슬’을 모티브로 전시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강 대표는 인터뷰 중 이 노래가 민중음악의 거장 김민기와 ‘가왕’ 조용필을 이어준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1997년 겨울 사적인 자리에서 조용필에게 가장 존경하는 음악인을 묻자 뜻밖에 “김민기”라는 대답을 들은 강 대표는 얼마 뒤 김민기와 만난 자리에서 조용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고 한다. 김민기의 대답이 이랬다. “내가 싫어한다고 말할 줄 알았지? 실은 나 조용필 좋아한다.” 강 대표의 주선으로 그해 말 서울의 한 일식집에서 세 사람이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저녁 식사를 하며 소주를 잔뜩 마신 뒤, 2차로 간 카페에서 조용필이 노래방 기계를 눌러 부른 노래가 ‘아침이슬’이었다. 예상치 못한 가왕의 노래에 김민기가 깜짝 놀란 눈으로 조용필을 바라봤다. 강 대표는 “제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던 순간”이라고 떠올렸다.
김민기(가운데)가 1991년 ‘겨레의 노래’ 공연 직후 서울 잠실에서 장일순(왼쪽), 김지하(오른쪽)와 함께 술자리를 하고 있다. 극단 학전 제공
강 대표는 “미얀마 사태를 보더라도 아직도 세계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며“아침이슬 50주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가치를 되돌아보고 세대 간 소통의 새로운 통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 역사뿐 아니라 가요사적으로도 “당시 트로트 중심의 식상한 한국 가요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높여놓았고, 1970년대 통기타 선풍을 일으킨 노래”라고 의미를 짚었다.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했던 강 대표는 ‘아침이슬’뿐만 아니라 잊혀가는 민중가요를 부활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달 <민주주의의 노래> 앨범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그날이 오면’을 비롯해 ‘언제나 시작을 눈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진달래’ ‘오월의 노래’ 등 10곡을 담았으며, 가수 윤선애,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악감독 이현관 등이 참여했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로 만든 노래 중 가장 많이 번역된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며 “케이팝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듯, 민중가요가 요즘 힘든 이들에게 그렇게 다가서길 바란다”고 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