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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나의 ‘완벽한’ 남자친구가 사이코패스라면…

등록 2021-06-04 19:49수정 2021-06-04 19:49

[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미국 드라마 ‘너의 모든 것’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내 이름은 벡. 

미국 뉴욕에 사는 작가 지망생이다. 글도 안 써지고 가진 것도 없는 위태로운 청춘. 남자친구는 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당 교수는 은근슬쩍 추행을 일삼는다. 글이라도 잘 써지면 좋으련만. 희망 따위는 사치일까. 그런 내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서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조는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과 다르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흔들리는 나를 잡아준다.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속삭인다. 어떻게 이런 그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 그가 무슨 일을 벌이는 것만 같다. 그는 그저 날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난 왜 이렇게 두려운 걸까. 이 두려움은 과연 사랑일까. 

내 이름은 조. 

서점에 우연히 들어온 손님이 마음에 든다. 이름을 알려주는 걸 보니 분명 나에게 호감이 있다. 이름을 알았으니 소셜미디어(SNS)를 알아내고 사진들을 보고 집과 학교를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를 더 알고 싶으니 그의 휴대폰을 훔친다. 이제부터 그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볼수록 우린 서로 많이 닮았고 운명인 것 같다. 우린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진정한 낭만주의자니까. 무엇보다 지금 그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이번 사랑은 꼭 성공해야겠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사랑 때문에 한 선택이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로맨티스트가 되고 싶은 사이코패스가 펼치는, 로맨스가 되고 싶은 스릴러 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너의 모든 것>(원제 )이다. 남자가 사랑을 위해 저지르는 일들이 실제로는 스토킹, 해킹, 주거 침입, 절도, 폭행, 살인, 시신 유기다. 사랑에 빠진 조는 이 모든 행동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처음에는 그의 남자친구만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에 방해꾼들이 자꾸 나타난다. 어쩔 수 없이 다 죽였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는 조의 내레이션이 중심이다. 사이코패스의 심리상태를 파고들며 19금 로맨스를 펼치니, 보는 내내 가슴이 조여오고 등골이 서늘하다. 사이코패스의 직업이 서점 직원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작가 지망생과 서점 직원은 사실 완벽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다. 조는 태연하게 수많은 책 속에서 살인의 정보를 얻는다. 닭 손질법을 보면서 주검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는 조의 모습은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검색하면 기록이 남고 추적을 당하는 세상에서, 서점은 가장 안전한 곳이다. 이 서점 지하에는 오래된 책을 보관하는 특별한(?) 공간까지 있다. 책을 보관하려면 온도·습도·환기가 중요한데, 이는 사람을 가두기에도, 주검을 보관하기에도 중요한 조건이다. 조는 오래된 책들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보통 가장 힘없는 존재야. 그래서 우리처럼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너의 모든 것>은 2014년 출간된 캐럴라인 케프니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엄브렐러 아카데미> <종이의 집> 이후 역대 네번째로 시청률이 높았다. 앞선 세 작품은 모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볼거리가 풍부한 판타지물이나 액션물이다. 반면 <너의 모든 것>은 심리물에 가까운데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로맨틱(?)한 사이코패스 조 골드버그를 연기한 펜 배질리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에서 댄 험프리를 연기한 배우여서 우리에게도 꽤 익숙하다. 귀네비어 벡 역의 엘리자베스 레일은 미국 디즈니가 만든 드라마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안나로 나왔다. <겨울왕국>의 그 안나 맞다. 귀네비어라는 특이한 이름은 <아서 왕>의 귀네비어 왕비 이름에서 따왔다. 원탁의 기사 랜슬롯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귀네비어 왕비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벡의 결말을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고리가 있다.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모습이 있다. 어쩌면 사회생활이란 진짜 나를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는 훈련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연애를 포함한 모든 사회관계에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도 상대에 대해 다 알고 있다며 관계를 주도하려는 사람이 많다. “너는 내가 잘 아는데”로 시작해서 “넌 이건 못해” “당신은 이게 문제잖아”로 이어지는 수많은 가스라이팅이 존재한다. 알다시피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쉽게 단정하는 사람에게서는 당신도 빨리 떨어지는 게 좋다. 참고로 소셜미디어와 구글링으로 벡의 모든 것을 알아내던 조 자신은 정작 어떤 소셜미디어도 하지 않는다. 가슴 졸이며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당신도 소셜미디어의 많은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친구 공개’로 바꾸게 될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함부로 공개한 후폭풍을 지켜봤으니 말이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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