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조직에서 훈련받은 주인공이 언더커버로 경찰이 된다. 어디에서 많이 본 내용이다. 좁은 복도의 총격 신은 영화 <올드보이>를, 언더커버라는 설정은 <무간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 작품, 의외로 새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왜일까. 한바탕 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은 여성을 앞세운 액션 누아르 장르라는 점이 다른 단점들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김진민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여성 누아르를 하고 싶었다. 여성 액션에 대한 위험성이 있고, (시청자가) 현실감이 부족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도전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오티티) 등 여러 플랫폼의 드라마들이 남성 중심이었던 장르에 여성을 내세우면서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있다. 영화에서는 2017년 <미옥> 등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원톱 액션 누아르를 제대로 시도한 작품은 드물다.
<마이 네임>은 클래식한 소재를 여자 주인공의 에너지로 끌고 간다. 그 힘을 지난해 <부부의 세계>로 스타가 된 한소희가 내고 있다. 당시 예쁜 외모의 ‘불륜녀’로 시청자에게 각인됐다. <마이 네임>은 최근 공개됐지만, <부부의 세계>가 끝나고 촬영을 시작했다. 털털한 ‘오혜진’과 화려한 ‘여다경’은 이질적이다. 그의 선택도, 그에게서 오혜진을 봤다는 제작진의 선택도 과감하다. 한소희는 최근 인터뷰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을 늘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누아르물을 좋아하기도 한다”며 “외모는 빈껍데기다. 예쁘게만 보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소희가 이런 것도 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는 그는 여성 원톱 액션 누아르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혼자 여럿을 상대로 액션을 펼치고, 마지막 회에서는 복도를 지나 방까지 이어지는 긴 액션을 쉼 없이 소화한다. 그는 서너달간 액션스쿨을 다녔고, 대본을 습득하기 전에 액션부터 배웠다. <부부의 세계> 때 44~46㎏이었던 몸무게가 <마이 네임> 때 53~54㎏으로 늘었다. “모든 액션 장면을 직접 촬영했고, 대역들도 따로 촬영해 더 나은 쪽으로 편집했다.” 다치지 않았냐고 물으니 “손 좀 베이고, 멍 좀 들긴 했지만 별것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이 네임> 이전에는 “운동의 ‘운’자도 몰랐다”는데, 여성 누아르물이 없었다면 ‘오혜진’이 된 한소희를 만날 수 있었을까. 한소희는 “뚜렷한 신념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캐릭터를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시작한 드라마 <지리산>(티브이엔)도 전지현의 체력에 입이 벌어지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지리산 구조대 레인저의 이야기다. 전지현은 레인저 중에서도 베테랑 ‘서이강’으로 나온다. 태풍을 뚫고 아이를 구하러 가는 등 거침없다. 지금까지 구조대원들을 다룬 드라마에서 여성은 보조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서이강은 앞장서서 사건을 해결한다. 2회에서 사기꾼을 잡고 칼에 찔린 강현조(주지훈)를 구해낸 건 서이강이었다. 실제 전지현도 강하다. 전지현은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촬영은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장비가 다 갖춰져 있으니 날아다녔다”며 웃었다.
그는 2013년 <베를린>, 2015년 <암살> 등 영화에서는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 역할을 많이 했지만, 드라마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였다. 지난 7월 김은희 작가의 <킹덤:아신전>(넷플릭스)에 출연하면서 드라마에서 이례적으로 전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전지현은 최근 강인한 여자 주인공이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여성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그런 역할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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