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프로그램 제작사들이 한류 바람을 타고 베트남, 타이 등 동남아와 중국으로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국내 제작된 ‘완제품’을 팔던 데에서 나아가 현지에서 직접 제작·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한류의 현지화’라 표현한다.
독립제작사 디에이치비(DHB)미디어는 타이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시장에 문을 국내 업계로선 처음으로 열었다. 올해 2월 타이에 진출해 <무야 무야>(Muya Muya·‘뭐야 뭐야’라는 뜻)라는 오락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3월부터 타이 국영티브이인
를 통해 방영돼 10월 현재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무야 무야>는 토크쇼와 반전드라마가 어우러진 것으로, 배우만 타이 사람일 뿐 작가와 연출, 카메라, 조명, 음향 등을 모두 한국인력이 맡았다. 한국 제작진이 만든 프로그램임을 내세우기 위해 진행자가 시작과 마무리 부분에서 한국어로 인사말을 하기도 한다.
타이는 방송 프로 대부분이 외주제작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간접광고(PPL) 규제가 없어 프로그램 안에 광고주 로고도 직접 노출할 수 있다. 방송사에서 외주제작사에 특정시간대 프로그램을 맡기면 이 제작사는 광고 수입까지 모두 챙긴다. 김도형 디에치비미디어 대표는 현재 “BB-TV와 20부작 드라마 <행복한 사기꾼>(가제) 편성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스비에스> 피디 출신인 윤상섭씨가 꾸린 독립제작사 호펜스(Hopens)는 베트남 투자자와 손잡고 드라마 제작사인 <티브이엠(TVM)>을 지난 8월 만들었다. 이 제작사는 텔레비전 스튜디오 등 제작 인프라를 구축하고 베트남 배우들을 캐스팅해 베트남판 <사랑과 야망>(김수현 작)을 제작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제작사도 있다. 이앤비스타스는 지난해 지역공중파 방송인 <상하이 TV>와 <베이징 TV>에서 전파를 탄 차인표 주연의 드라마 <줄라이 모닝>을 제작했다. 특화된 현지화 제작 시스템과 제작환경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정부로부터 문화산업진흥기금(4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엔비스타스는 1970년대 국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팔도강산>을 12월부터 제작할 예정이다.
이들을 포함해 지난해부터 10여개 업체 정도가 타이, 베트남, 중국 등에서 방송프로 제작시장을 개척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제작사들이 국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국내 외주제작 시장이 메이저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앤비스타스 이태형 대표는 “방송국 중심의 제작구조, 배우들의 높은 출연료도 제작사들이 국외로 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류를 타고 아시아로 진출하는 제작사들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앤비스타스는 중국에 이어 내년엔 베트남에서도 드라마를 제작·공급할 계획이다. 국내 손꼽히는 제작사인 올리브나인 김태원 부사장은 “내년쯤 베트남, 중국 등에서 현지 제작을 하거나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독립제작사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메이저 제작사들도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공동제작, 현지 제작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윤희 김미영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