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끝 백령도 바위끝에서는 물범이 게으르게 졸고, 동쪽 철원땅에서는 냉정한 포식자 수리부엉이가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50년 동안 얼어붙은 땅으로 보였던 비무장지대(DMZ)는 사실 갖가지 야생이 활개치는 생명의 터전이다.
<문화방송>이 창사 45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고화질(HD) 자연 다큐멘터리
에서는 비무장지대의 야생과 생명을 담았다. 248km 길이, 남북으로 4km 넓이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에는 환경부 추산 멸종위기종 67종을 포함한 2716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최삼규 피디와 김용남 촬영감독 등 7명의 제작진이 11개월 동안 600개의 테이프에 온갖 생명체가 바글거리는 비무장지대의 사계절을 담았다.
1일 밤 10시50분에 방송되는 1부 ‘생명의 땅’과 2부 ‘새들의 낙원’의 출연진은 이렇다. 점박이 물범, 수달, 개리, 만주 고라니, 수리부엉이, 독수리, 산양, 수달, 임진강 어름치, 북한강 황쏘가리. 한반도 땅에 이런 귀한 동물들이 아직 남아 있다니 이름만 들어도 배부를 일인데, 카메라는 두타연을 거슬러 오르는 열목어의 향연과 영역싸움으로 내달리는 산양 등 번식과 생존 모습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지난 28일 열린 시사회에서 최 피디는 “국내 최초로 에이치디 망원렌즈, 에이치디 수중 하우징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비무장지대에 처음으로 지미집(무인 크레인 카메라)까지 설치했다”고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곤충의 사랑> 등으로 자연다큐멘터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최 피디의 작업이기에 가능한 후원과 투자였으리라 짐작된다.
전작 <푸른 늑대>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불안한 공존을 담았던 최 피디는 3부 ‘평화를 기원하며’ 편(2일 밤 10시40분 방송)에서도 그 미망을 풀어놓는다. 비무장지대는 이미 물새 서식지로 귀중함을 인정받아 1호 람사습지로 지정됐던 용늪이나 야생화의 보고인 향로봉 등을 품고 있는 광대한 생명의 땅이지만, 그러면서도 30만평 이상에 대인지뢰가 묻혀 있으며 철책선 사이로 무장한 병사들이 마주 대하고 있는 ‘잠재적 전쟁가능지역’이 아니었나.
“DMZ는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시험장”이라던 첫머리의 나레이션은 프로그램 후반부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3부에서는 천연의 서식지에 살고 있는 동물과 그곳을 지키는 군인의 삶을 담았다.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뿌려주고 폭풍지뢰에 발목이 잘린 멧돼지와 어미 잃은 새끼 고라니를 보살피는 모습은 임시적이지만, 어쨌든 지금 누릴 수 있는 평화의 일부분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