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송 ‘시대의 초상’ 인요한 편
교육방송 ‘시대의 초상’ 인요한 편 26일 방영…우직한 한국 사랑 다뤄
1980년 5월26일 광주 전남도청. 광주 시민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군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얘기했고, 외신기자들은 받아적으며 질문을 했다. 시민군과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전라도 사투리와 영어를 오가며 통역을 하는 노란 머리 청년이 있었다. 연세대 의대 1학년생 인요한. 서울서 광주까지 한달음에 내달려온 터였다. “우린 미국의 중재를 원한다”는 시민군의 목소리를 외신기자들에게 전하는 그의 푸른 눈에서 결연한 빛이 번뜩였다. 메시지는 곧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단 하루였던 광주에서의 시간은 그의 삶을 흔들었다. 미국 대사관은 한국을 떠나라 했고, 한국 중앙정보부는 2년여 동안이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미국으로 훌쩍 떠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될 상황이었지만, 그는 끝내 한국을 택했다. 국적은 미국이어도 천상 ‘순천 촌놈’이었던 그는 나고 자란 이땅을 버리지 못했다. 4대를 이은 한국 기독교 선교가문 린튼가의 아들로 1959년 태어난 그는 또래들과 참외·수박서리를 하며 걸죽한 사투리를 배웠고, 순박한 이웃과 살가운 정을 나눴다.
97년 1월 북한 압록강변. 인요한에게 다가온 북한 사람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조선말 참 잘하시는구만요.” 긴장을 떨치지 못했던 그는 그 웃음에 힘을 얻고 평양으로 향했다. 인요한의 외증조할아버지 이름을 딴 ‘유진 벨’ 재단에 북한이 결핵퇴치 사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두만강을, 점심에 백두산을, 저녁에 압록강을 봤을 정도로 북한 곳곳을 누비며 20만명의 결핵환자를 치료하고, 의료지원 사업을 펼쳤다. 순박한 북한 사람들을 만나며 예의 순천 골목길 그 ‘정’을 느꼈다.
2007년 6월 방송국 스튜디오. “북한에선 ‘스파이 아니냐’고 묻고, 남한에선 ‘빨갱이 아니냐’고 묻고, 미국에선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 남한은 밤낮 반미시위 하는데 당신은 왜 한국인들과 사느냐’고 물었을 때, 정말 무인도에라도 가고 싶었죠.”
병원에서는 하얀 가운 차림으로 환자를 돌보는 근엄한 의사(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 소장)이자 밖에서는 사람 좋은 아저씨인 그의 넉넉한 웃음 뒤엔 ‘한국인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오며 겪어야 했던 아픔이 숨겨져 있다. 그저 한국말 잘하는 이방인 정도로만 취급하는 이들이 남긴 생채기는 쉬이 아물지 않았다. 그래도 스스로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나칠 만큼 우직한 한국 사랑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교육방송이 26일 밤 10시50분에 방송하는 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대의 초상> ‘당신들의 미국, 나의 한국 - 인요한’ 편(사진)에서 그가 풀어내는 얘기를 들으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들의 미국, 나의 한국”이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그의 삶을 듣다 보면 가슴으로 이해하게 될 법도 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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