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기하’ 열연한 박은빈
최근 안방극장에 불어닥친 사극 열풍은 아역배우들의 열연이 한몫했다. <왕과 나> <태왕사신기>의 유승호, <이산>의 박지빈 등은 성인 배우 못잖은 연기력으로 초반 시청자 몰이에 앞장섰다. 그 중 <태왕사신기>에서 문소리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박은빈(16)의 활약이 눈에 띈다. 그는 화천회 신녀의 카리스마와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두루 갖춘 기하의 복잡한 내면을 균형 있게 분출하며 성공적인 캐스팅이란 평가를 얻었다.
<명성황후> <왕의 여자> <무인시대> 등 스스로를 “사극 체질”이라고 말하는 박은빈에게도 <태왕사신기>는 아주 특별한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껏 정통 사극만 했는데 퓨전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액션 연기와 사랑하는 감정 연기도 처음 해봤어요. 와이어 연기는 재밌었는데 사랑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건 어떤 감정인지 몰라 처음엔 헷갈렸어요.” 연기가 공부보다 어렵다는 걸 처음 느꼈다면서 <태왕사신기>를 통해 배우로서 한층 성장한 것 같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박은빈은 다섯살 때 백화점 의류 브랜드 모델을 시작으로 30여 편이 넘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개그콘서트> ‘수다맨’, 보험회사 광고모델로 주목받았다. 이병헌, 송윤아 등 톱스타들이 모두 그를 ‘거쳐 갔다.’ 박상원과는 데뷔작 <백야 3.98>에서, 최민수와는 영화 <남자이야기>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담덕’역의 유승호와는 다섯살 때 함께 의류 카탈로그를 찍었다. “승호와는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연기했어요. 오랜 만에 만났는데 훌쩍 키가 자라 깜짝 놀랐어요. 승호는 착해요. 근데 말이 별로 없어요.(웃음)” “최민수 아저씨는 오빠라고 부르라며 재미있게 해주고, 박상원 아저씨는 배우의 자세를 알려주는 등 자상하다”면서 가장 좋은 사람은 “문소리 언니”를 꼽는다.
드라마에서는 똑 부러지는 연기를 선보이는 그도 돌아서면 여드름 고민에 빠진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녀다. “앞머리를 자른 뒤부터 여드름이 나고 있어 속상하다”거나 “키가 안 크면 어쩌나”가 요즘 최대 관심사다. 학교생활은 어떨까? 그는 또래 아역배우들 중에서도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촬영이 늦게 끝나도 다음날 학교는 꼭 가요. 친구들도 저를 편하게 대해줘요. 남자애들은…, 나를 바라만 봐요.(웃음) 말을 안 시키니까 나도 말을 안 하는데 내가 남자 애들과는 아예 말을 안 하는 줄 오해하나 봐요. 히히.”
올해는 <누나> <서울 1945>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 유독 출연작이 많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인 그에게도 “같은 시간에 방송하는 드라마에는 중복출연하지 않는다”는 자기만의 연기 원칙은 있다. 그런데 <태왕사신기>의 방영 날짜가 미뤄지면서 공교롭게 경쟁작인 <로비스트>에도 모습이 비친다. “시청자들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걱정하는 가녀린 목소리에 배우다운 당참이 묻어난다. 글 남지은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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