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 엄마 이선영 역 나영희
‘인순이…’ 엄마 이선영 역 나영희
“세상이 아무리 밀어내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인순이는 자신이 살인 전과자란 사실을 알게 된 뒤 냉랭해진 엄마를 향해 울부짖는다. 많은 시청자들도 인순이를 따라 울며 생각했다. “무슨 엄마가 저러냐”고. 지난 5일 촬영장소에서 만난 나영희는 “한물간 배우인 이선영도 상처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내 딸이 살인자라는게 받아들이기 힘든 거예요. 자기 감정이 소중한 사람인데 살아온 환경이 다른 딸을 보며 무조건 행복하기만 하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이선영이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엄마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감정이 드러나는 현실 속의 엄마라는 점에서 연기하면서도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때가 종종 있어요”라고 말했다.
요즘 인순이 엄마는 ‘지하철녀’로 뜬 인순이에게 대리만족을 느낀다. “내 속으로 낳은 아이인데 왜 저렇게 밉지?”하며 인순이에게 눈을 흘기던게 언제였나 싶게 이제는 발 벗고 스타 만들기에 나섰다. 그래서 진짜 배우인 나영희가 볼 때 극중 배우인 이선영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측은하기도 하다. “배우는 나이가 들면 주인공을 내주고 주변 인물을 맡게 되는 단계를 거쳐요. 배우 생활에 회의가 드는 슬럼프도 한번씩 겪고요. 나도 이 단계를 모두 거쳐 지금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선영은 이 순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죠.”
그렇게 삶이 피곤하기만 한 인순이 엄마에게도 봄날 같은 따스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팬 카페까지 만들며 응원하는 상우 아버지(최일화)를 만날 때다. 나영희는 “로맨스도 아니고 오래 갈 관계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은 요즘 웃음 장치로 극의 긴장감을 푸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감정기복이 심한 인물이라 연기하기가 쉽진 않다”는 그도 이 때만큼은 편하게 아이처럼 밝고 수줍은 미소를 보여준다.
1980년에 문화방송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나영희는 80~90년대에 주로 영화에서 활동했다. 2~3년 전부터 드라마에서 얼굴을 다시 보이기 시작한 그는 ‘대한민국 엄마’라는 고두심·김해숙과는 다른 엄마 역할을 주로 선보였다. <슬픈 연가>에서는 나이트클럽 주인으로 억척스럽게 돈을 버는 엄마, <게임의 여왕>에서는 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엄마 등을 맡았다. 대체로 자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기보다 짐이자 연민이 가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보통 엄마들의 둥글고 편안한 얼굴이 아니어서인지 강한 느낌의 엄마 캐릭터가 주로 들어와요. 대중적인 엄마는 아니지만 보는 분들에 따라서는 신선할 것 같아요.”
자기 안의 틀을 깨고 행복을 찾아가자는 <인순이…>의 메시지처럼 나영희도 행복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과 기쁨이 성공·돈·명예로 찾는 게 아니잖아요. 현명해진건지 행복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딪쳐서 털고 일어나는 인간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이번 드라마가 그래서 잘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김미영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