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사이다’ ‘기괴한’ 아이디어 회의 현장
이거, 잡담이야? 회의야?
괴발개발…열두시간 논스톱…
전교 1등은 꼭 하나 틀려도 다 틀렸다고 말하고, 노는 분위기를 깨며, 전교 2, 3등과는 안 친하다. 엄마가 야단 칠 때마다 비교하는 엄마 친구 아들들은 왜 다 1등을 놓쳐본 적 없고, 청소까지 잘 하는지…. 방송 시작 한 달째인 한국방송 2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사이다>(일 오전 10시45분) 가운데 ‘그들은 왜’ 코너에서 소개한 전교1등과 엄마 친구 아들의 특징들이다. 공감한 누리꾼들은 키득거리며 여기저기 퍼 날랐다.
‘공감 쇼’를 내세운 <사이다>에는 모두 네 코너가 있는데, 각 코너마다 20~30개씩 공감 거리를 집어내 전달한다. 매회 80~100차례 “맞아 꼭 저래”라는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밥만 분리된 삼각김밥을 찍어 ‘내가 울컥한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인 사진을 보고 권재영 피디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아이디어는 다 빨아들이는 처절한 블랙홀이다.
그 많은 생활 속 공감 아이디어는 어디서 구할까? 답은 일주일에 공식적으로만 두 번씩, 매번 12시간 넘게 하는 ‘기괴한’ 회의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길만한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회의를 한다고? 딱히 주제도, 누가 누구에게 보고한다는 형식도 없으니 잡담과 비슷한데, 아이디어가 다 나올 때까지는 자리를 뜰 수 없으니 회의이기도 하다. 팀장 격인 권 피디는 “프로그램이 사는 이야기라 잡담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태헌 피디는 “느는 건 뱃살”이라고 덧붙였다. 피디·작가 등 10명이 참석한 이상한 회의를 지난달 29일 엿봤다.
■오후 2시, 어디로 튈지 며느리는 알까? =시작은 누군가가 점을 보러 갔다는 이야기에서부터였다. ‘그들은 왜’에서 점쟁이를 다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떤 점쟁이가 손님으로 온 여자를 보고 자기 부인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데.” “점이 맞은 걸까, 점쟁이가 잘 꼬신걸까?” 사돈의 팔촌이 점 보러 간 사연까지 기어코 다 나오고서야 점쟁이의 특징들이 모아졌다. 왜 점쟁이는 여름에도 긴 팔 옷을 입나, 한자를 잘 아나, 자세히 물어보면 화를 내나, 왜 동서남북 방향으로 알려주나…. 특징 20개는 채워야 하는데 15개에서 진도가 안 나갔다. 한 작가가 뜬금없이 “남자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해 말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침묵이 휩쓸고 지나갔다. 권 피디는 “특정 직업을 비하하거나, 기분 나빠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주제는 피해간다”고 귀뜸했다.
■오후 3시20분, 독한 게 뭘까? =권 피디가 책임피디(시피)에게 불려갔다 돌아왔다. <사이다>의 시청률은 6~7%대로 같은 시간대 문화방송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에 밀리고 있다. “시피가 내 가슴을 후벼 파더라. 상대(프로그램)는 조미료 버무리는데 우린 너무 착하기만 하데. 조금 더 독하게 갔으면 좋겠데.” 이태헌 피디, 백성혜 작가에게 “살면서 착하다는 소리 처음 들어보지?”라고 장난을 걸었다. 나름대로 ‘독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동방신기는 왜’ ‘빅뱅은 왜’…. 이 ‘독한’ 릴레이에 “프로그램 폐지되겠다”며 한 작가가 제동을 걸었다. 권 피디는 “산으로 가고 있구만”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오후 5시, 기자는 아이디어 없나? =‘그들은 왜’는 점쟁이의 특징을 쥐어짜 정리하고 ‘답대답’ 코너로 넘어갔다. ‘답대답’은 같은 상황을 두고 다른 두 집단의 반응을 비교하는 코너다. 아나운서 대 일반인, 아버지 대 어머니로 나눠 견주는 식이다. 박력있는 남자(터프가이) 대 일반인이 떠올랐다. 한 작가가 터프가이의 대명사 최민수의 어록을 검색해 읽어줬다. “나이를 물어보면 보통 사람은 숫자로 말하고 터프가이는 첫눈을 몇번 맞았다고 말하지.” “그럼 터프가이는 한 살 때도 눈을 맞았다는 거야?” 그래도 이 주제에는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었다. 하나는 됐는데 ‘답대답’에는 주제만 3가지가 필요하다. ‘애교녀 대 섹시녀’로 해보기로 하자, 모두 느낌을 보고 싶다며 백성혜 작가에게 애교를 부려보라고 주문했다. 백 작가가 코맹맹이 소리로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흉내를 냈다. “자갸(자기야), 꼼떠(컴퓨터)하고 있어.” 이태헌 피디가 “짜증 작렬”이라고 평했다. 백 작가는 기자를 보며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연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느낌이 안 산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가 기자를 보고 말했다. “아이디어 없나요?” ■오후 6시, 스머프의 정체는? =권 피디가 ‘답대답’ 아이디어를 하나 더 내라고 말하고 30분 동안 자리를 떴다. ‘스머프 대 곰돌이’라는 의견이 나오자 이태헌 피디와 유정아 피디는 스머프가 어느 나라 만화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파파스머프가 빨간 모자를 쓴 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 그런 해석은 마빡이가 현대판 노동의 소외를 다뤘다는 주장처럼 과잉이라는 반론…. ■밤 9시, 드디어 밥!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다들 지쳤는지 조용히 숟가락질만 했다. 누군가 “피자 대 빈대떡은 어때”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새벽 2시, 오늘은 선방? =회의의 끝은 작가들이 한 회 대본을 쓸 수 있을만큼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다. 이날은 새벽 2시에 마무리됐다. 권 피디는 “양호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동대문 시장보다는 일찍 끝나네”라고 한 작가가 덧붙였다. 이런 회의를 바탕으로 4일 동안 촬영하면 한 회가 된다. 이날 회의의 아이디어는 11일 방송으로 나간다. <사이다>는 ‘사는 이야기를 다 모아’에서 따온 제목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오후 5시, 기자는 아이디어 없나? =‘그들은 왜’는 점쟁이의 특징을 쥐어짜 정리하고 ‘답대답’ 코너로 넘어갔다. ‘답대답’은 같은 상황을 두고 다른 두 집단의 반응을 비교하는 코너다. 아나운서 대 일반인, 아버지 대 어머니로 나눠 견주는 식이다. 박력있는 남자(터프가이) 대 일반인이 떠올랐다. 한 작가가 터프가이의 대명사 최민수의 어록을 검색해 읽어줬다. “나이를 물어보면 보통 사람은 숫자로 말하고 터프가이는 첫눈을 몇번 맞았다고 말하지.” “그럼 터프가이는 한 살 때도 눈을 맞았다는 거야?” 그래도 이 주제에는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었다. 하나는 됐는데 ‘답대답’에는 주제만 3가지가 필요하다. ‘애교녀 대 섹시녀’로 해보기로 하자, 모두 느낌을 보고 싶다며 백성혜 작가에게 애교를 부려보라고 주문했다. 백 작가가 코맹맹이 소리로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흉내를 냈다. “자갸(자기야), 꼼떠(컴퓨터)하고 있어.” 이태헌 피디가 “짜증 작렬”이라고 평했다. 백 작가는 기자를 보며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연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느낌이 안 산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가 기자를 보고 말했다. “아이디어 없나요?” ■오후 6시, 스머프의 정체는? =권 피디가 ‘답대답’ 아이디어를 하나 더 내라고 말하고 30분 동안 자리를 떴다. ‘스머프 대 곰돌이’라는 의견이 나오자 이태헌 피디와 유정아 피디는 스머프가 어느 나라 만화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파파스머프가 빨간 모자를 쓴 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 그런 해석은 마빡이가 현대판 노동의 소외를 다뤘다는 주장처럼 과잉이라는 반론…. ■밤 9시, 드디어 밥!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다들 지쳤는지 조용히 숟가락질만 했다. 누군가 “피자 대 빈대떡은 어때”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새벽 2시, 오늘은 선방? =회의의 끝은 작가들이 한 회 대본을 쓸 수 있을만큼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다. 이날은 새벽 2시에 마무리됐다. 권 피디는 “양호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동대문 시장보다는 일찍 끝나네”라고 한 작가가 덧붙였다. 이런 회의를 바탕으로 4일 동안 촬영하면 한 회가 된다. 이날 회의의 아이디어는 11일 방송으로 나간다. <사이다>는 ‘사는 이야기를 다 모아’에서 따온 제목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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