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K-2 ‘사이다’ ‘기괴한’ 아이디어 회의 현장

등록 2008-05-04 20:41

K-2 ‘사이다’ ‘기괴한’ 아이디어 회의 현장
K-2 ‘사이다’ ‘기괴한’ 아이디어 회의 현장
이거, 잡담이야? 회의야?
괴발개발…열두시간 논스톱…

전교 1등은 꼭 하나 틀려도 다 틀렸다고 말하고, 노는 분위기를 깨며, 전교 2, 3등과는 안 친하다. 엄마가 야단 칠 때마다 비교하는 엄마 친구 아들들은 왜 다 1등을 놓쳐본 적 없고, 청소까지 잘 하는지…. 방송 시작 한 달째인 한국방송 2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사이다>(일 오전 10시45분) 가운데 ‘그들은 왜’ 코너에서 소개한 전교1등과 엄마 친구 아들의 특징들이다. 공감한 누리꾼들은 키득거리며 여기저기 퍼 날랐다.

‘공감 쇼’를 내세운 <사이다>에는 모두 네 코너가 있는데, 각 코너마다 20~30개씩 공감 거리를 집어내 전달한다. 매회 80~100차례 “맞아 꼭 저래”라는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밥만 분리된 삼각김밥을 찍어 ‘내가 울컥한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인 사진을 보고 권재영 피디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아이디어는 다 빨아들이는 처절한 블랙홀이다.

그 많은 생활 속 공감 아이디어는 어디서 구할까? 답은 일주일에 공식적으로만 두 번씩, 매번 12시간 넘게 하는 ‘기괴한’ 회의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길만한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회의를 한다고? 딱히 주제도, 누가 누구에게 보고한다는 형식도 없으니 잡담과 비슷한데, 아이디어가 다 나올 때까지는 자리를 뜰 수 없으니 회의이기도 하다. 팀장 격인 권 피디는 “프로그램이 사는 이야기라 잡담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태헌 피디는 “느는 건 뱃살”이라고 덧붙였다. 피디·작가 등 10명이 참석한 이상한 회의를 지난달 29일 엿봤다.

■오후 2시, 어디로 튈지 며느리는 알까? =시작은 누군가가 점을 보러 갔다는 이야기에서부터였다. ‘그들은 왜’에서 점쟁이를 다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떤 점쟁이가 손님으로 온 여자를 보고 자기 부인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데.” “점이 맞은 걸까, 점쟁이가 잘 꼬신걸까?” 사돈의 팔촌이 점 보러 간 사연까지 기어코 다 나오고서야 점쟁이의 특징들이 모아졌다. 왜 점쟁이는 여름에도 긴 팔 옷을 입나, 한자를 잘 아나, 자세히 물어보면 화를 내나, 왜 동서남북 방향으로 알려주나…. 특징 20개는 채워야 하는데 15개에서 진도가 안 나갔다. 한 작가가 뜬금없이 “남자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해 말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침묵이 휩쓸고 지나갔다. 권 피디는 “특정 직업을 비하하거나, 기분 나빠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주제는 피해간다”고 귀뜸했다.

■오후 3시20분, 독한 게 뭘까? =권 피디가 책임피디(시피)에게 불려갔다 돌아왔다. <사이다>의 시청률은 6~7%대로 같은 시간대 문화방송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에 밀리고 있다. “시피가 내 가슴을 후벼 파더라. 상대(프로그램)는 조미료 버무리는데 우린 너무 착하기만 하데. 조금 더 독하게 갔으면 좋겠데.” 이태헌 피디, 백성혜 작가에게 “살면서 착하다는 소리 처음 들어보지?”라고 장난을 걸었다. 나름대로 ‘독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동방신기는 왜’ ‘빅뱅은 왜’…. 이 ‘독한’ 릴레이에 “프로그램 폐지되겠다”며 한 작가가 제동을 걸었다. 권 피디는 “산으로 가고 있구만”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오후 5시, 기자는 아이디어 없나? =‘그들은 왜’는 점쟁이의 특징을 쥐어짜 정리하고 ‘답대답’ 코너로 넘어갔다. ‘답대답’은 같은 상황을 두고 다른 두 집단의 반응을 비교하는 코너다. 아나운서 대 일반인, 아버지 대 어머니로 나눠 견주는 식이다. 박력있는 남자(터프가이) 대 일반인이 떠올랐다. 한 작가가 터프가이의 대명사 최민수의 어록을 검색해 읽어줬다. “나이를 물어보면 보통 사람은 숫자로 말하고 터프가이는 첫눈을 몇번 맞았다고 말하지.” “그럼 터프가이는 한 살 때도 눈을 맞았다는 거야?” 그래도 이 주제에는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었다. 하나는 됐는데 ‘답대답’에는 주제만 3가지가 필요하다.

‘애교녀 대 섹시녀’로 해보기로 하자, 모두 느낌을 보고 싶다며 백성혜 작가에게 애교를 부려보라고 주문했다. 백 작가가 코맹맹이 소리로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흉내를 냈다. “자갸(자기야), 꼼떠(컴퓨터)하고 있어.” 이태헌 피디가 “짜증 작렬”이라고 평했다. 백 작가는 기자를 보며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연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느낌이 안 산다”고 설명했다. 한 작가가 기자를 보고 말했다. “아이디어 없나요?”

■오후 6시, 스머프의 정체는? =권 피디가 ‘답대답’ 아이디어를 하나 더 내라고 말하고 30분 동안 자리를 떴다. ‘스머프 대 곰돌이’라는 의견이 나오자 이태헌 피디와 유정아 피디는 스머프가 어느 나라 만화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파파스머프가 빨간 모자를 쓴 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 그런 해석은 마빡이가 현대판 노동의 소외를 다뤘다는 주장처럼 과잉이라는 반론….

■밤 9시, 드디어 밥!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다들 지쳤는지 조용히 숟가락질만 했다. 누군가 “피자 대 빈대떡은 어때”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새벽 2시, 오늘은 선방? =회의의 끝은 작가들이 한 회 대본을 쓸 수 있을만큼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다. 이날은 새벽 2시에 마무리됐다. 권 피디는 “양호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동대문 시장보다는 일찍 끝나네”라고 한 작가가 덧붙였다. 이런 회의를 바탕으로 4일 동안 촬영하면 한 회가 된다. 이날 회의의 아이디어는 11일 방송으로 나간다. <사이다>는 ‘사는 이야기를 다 모아’에서 따온 제목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