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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모지란’으로 사느라 사람 접촉도 끊었죠

등록 2008-09-07 17:44수정 2008-09-07 20:03

배우 김희정
배우 김희정
‘조강지처클럽’ 초비참 불륜녀 역 김희정
배우 김희정
배우 김희정
“모지란 인생 너무 팍팍해요”
인터뷰 도중 목메어 울기도

17년무명 탈출 배우로 각인
분노의 가슴치기 장면 압권

배배 꼰 이야기와 엽기적인 설정 탓에 욕을 먹지만 에스비에스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은 시청률 30%를 웃돌며 1~2위를 지키고 있다. 40대 이상의 공감을 끌어낸 덕이다. 다른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단박에 “이혼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조강지처클럽> 여자들은 그렇게 모질지 못하거나 자존심 세울 상황이 못 된다. 그들은 화장기 대신 눈물·콧물 범벅인 서민들의 얼굴과 닮은 구석도 있다.

그 가운데서 ‘초절정 비참 캐릭터’는 모지란이다. 남편과 애를 버리고 사랑 좇아 애인집으로 들어오지만, 마음 떠난 애인이 나가라고 달달 볶아댄다. 갖은 모욕을 당해도 “내가 잘할게”라고 빌며 발버둥친다. 그렇게 참더니 드디어 폭발, “내가 이집 식모냐”며 통곡한다.

모지란의 슬픔이 절절하게 전달된 공은 실제로 가슴에 멍이 들도록 열연했던 배우 김희정(38)에게 있다. 모지란 역의 김희정은 어디서 본 듯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 얼굴, 17년 무명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비로소 배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눈물 바람하는 모지란과 달리 김희정은 활달했다. 그런데 유쾌한 농담을 하다가도 인터뷰 도중 무당 몸에 신이 들어가듯 모지란이 되어 “기집애(모지란)가 속 썩여서 …”라며 울기도 했다. 그는 “나도 이렇게 캐릭터에 들어간 건 처음”이라며 “이전에는 이렇게 될 만큼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비굴하게 사는 모지란이 이해가 되나?


“김희정으로선 이해 못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김희정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모지란에게 살길이 없지 않나. 돈도 없고. 자식 때문에라도 버티게 될 거 같다. 자식까지 버리고 택한 남자인데 잘 못살면 자식들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보겠나.”

분노의 가슴치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때 대사를 씹었다. ‘미친년이 저예요’에서 ‘미친년’을 빼먹었다. 너무 아쉽다. 우느라고 내가 가슴을 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리 지르는 것보다 감정을 살리는 장면이 더 힘든다. 내가 언제 해봤어야지 …. 모지란을 내쫓으려는 한원수에게 싹싹 비는 장면이 있었는데 차마 못 하겠더라. 자존심이 상했던 거 같다. 그래도 하긴 했는데 절실하지 못했다. 100% 모지란은 못 되더라도 모지란이 딛고 있는 땅을 짚어보기는 해야 하는데 …. 모지란은 바닥 아닌가. 내가 얼마나 더 힘들어야 될까. 1년 동안 모지란의 심정을 잊을까 사람도 안 만났는데 …. (이 대목에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 모지란의 인생이 너무 팍팍하잖은가. 다른 연기자들은 연기할 때만 인물에 빠졌다가 잘 빠져나가던데 나는 조절이 잘 안 된다. 연기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지란 모습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지란 모습
다들 잘한다던데 왜 이러나. 어떻게 배우가 됐나?

“잘난 거 없는 아이였는데 요즘 용 됐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 한 게 인연이 돼 연극영화과를 갔다. 대학교 3학년 때 연극에서 냉소적인 성격의 역할을 맡았는데 뚱뚱하면 안 어울릴 거 같아 63㎏에서 56㎏까지 뺐다. 뺀 김에 공채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붙었다.”

배역 놓칠까 휴대전화도 안 꺼놓고 여행도 잘 안 갔다고 들었다.

“들어온 일 노느라고 못하는 게 싫었다. 사람들이 날 어떤 이미지로 보고 어떤 역으로 부르려나 궁금했다. 찾는 사람 없으면 밥집 해야지 생각했는데 또 연락이 오더라.”

후배들이 치고 올라가면 속상하지 않았나?

“어쩔 수 없는 거다. 인정해야지. ‘나는 왜 이래’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괴로워진다.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저 사람은 자기 인생 사는 거고 …. ‘뭐가 되고 말겠어’ 그러려면 날 볶아야 하는데 그래서 가지고 싶은 거 가지면 뭐할 건가. 얼굴에 주름만 생기지.”

화날 때는 없었나?

“드라마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 부인이었는데 기모노를 거지 같은 걸 줬다. 분량이 아니라 역할에 따라 옷을 줘야 하는데 …. 미리 말을 했으면 내가 준비할 거 아니냐고 따졌다. 1991년 연기 시작할 때 일당이 1만원에서 세금 200원 뗀 9800원이었다. 그때도 내 역할에 맞는 옷을 내가 사기도 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출연했는데, B급 재연배우라고 괄시하는 시선도 있었을 것 같다.

“놀면 뭐하나? 난 A급이니까 집에 있을래 그러면 A급 되나?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문영남 작가가 이걸 보고 <소문난 칠공주>에 뽑아줬고 그 인연으로 <조강지처클럽>에 출연하게 되지 않았나. 문 작가님도 그렇고 사람들이 내가 연예인 같은 느낌이 없고, 망쳐놓을수록 예쁘다고 하더라.(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어떤 배우씩이나 ….(웃음)”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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