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영애씨
EBS ‘한문페’ 한영애씨
마지막 생방송 쓴소리
마지막 생방송 쓴소리
27일 서울 <교육방송>(EBS) 라디오국.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의 마지막 생방송이 진행중이었다.
“노래만 부르고 무대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수줍음도 많고 평소에 말을 거의 안 하고 살아요. 사람 관계를 맺지도 않구요.”
가수 한영애(사진)씨가 무대가 아닌 곳에서 자신을 드러낸 것은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었다. 스스로 “극기와도 같다”고 말하는 ‘소통’이라는 화두에 매달린 지 8년, 역설적으로 그는 소통의 부재로 프로를 떠나게 됐다. 일방적인 프로 폐지 통보 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까지 밝히면서 프로의 존속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씨는 “공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우리 방송을 들으며 날개를 단 듯 잠깐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는 한 노동자의 편지, 크리스마스에 청취율 집계에는 들어가지 않는 부류지만 그런 사람들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했던 70대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안타깝기만 하다”고 복잡한 속내를 내비쳤다.
교육방송의 봄 개편으로 라디오의 주요 문화·교양 프로들이 영어·취업 프로로 대체되면서 청취자들의 반발이 컸고, 그 중심에 <한영애의…>가 있었다. “담담해요. 폐지를 통보받은 그 순간부터 담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문화는 경쟁이라는 잣대에는 맞지 않는데 모든 것에서 경쟁만 하려 드는 것 같네요.”
그는 이날 문화 이야기를 전하는 꼭지에서 방송 8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문화 한 페이지를 잠시 떠납니다. 절차상의 소명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질(퀄리티)이 낮아 프로를 폐지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죠. 그것은 단 한 번의 소통도 없이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은 것입니다. 방송 프로는 6개월 단위로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은 중요합니다. 설명 없는 일방적인 결정은 예의가 없는 것입니다.(중략) 그동안 습관적으로 방송을 하진 않았는지, 너무 정형화된 틀 속에 저의 사고와 시선을 맞춘 것은 아닌지 이제 돌아보려고 합니다.”
8년 동안 ‘까칠이’로 불리며 책, 영화 등 프로의 모든 코너를 일일이 챙겼던 그는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방송 전 두 시간, 끝나고 두 시간, 방송과 관련된 공연이나 전시를 가면 다섯 시간, 8년을 하루하루 <한영애…>에 머리채 잡힌 듯 살았다”며 “이제 전화기를 꺼두고 연습실에만 파묻힐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하지 못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이 8년간 유보됐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마지막 생방송인 이날은 새로 단장한 그의 대학로 연습실에 악기가 들어오는 날이기도 하다. 한씨는 “나는 가수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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