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별난 세상 구경 ‘제보’가 필요해

등록 2009-04-12 20:02수정 2009-04-12 21:59

‘티브이 특종’ ‘생활의 달인’ ‘뉴스왕’…
제보는 ‘밥줄’…주인공 찾아 지구촌 삼만리
열 건 중 한 건은 ‘허탕’…“그림보단 감동 이야기”
무한 동력엔진을 27년째 연구하는 아저씨는, 성형 중독이었던 선풍기 아줌마는, 강아지를 돌보는 고양이는 도대체 어떻게 텔레비전에 나온 것일까.

“단독 취재했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우리 아이 엉덩이에 석면이 뿌려지고 있었다’는 류의 경천동지할 특종을 내놓는 시사고발 프로그램도 아니다. ‘인간극장’류의 본격 휴먼다큐라고 할 수도 없으며, 누군가를 금전적으로, 의학적으로 돕는 리퀘스트·솔루션 프로그램은 더더욱 아니다. 교양과 예능의 범주를 넘나드는 제보 프로그램, 문화방송 <티브이 특종, 놀라운 세상>, 에스비에스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생활의 달인> <있다, 없다>, 한국방송 <국민소통 버라이어티 뉴스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에게… 제보란?


별난 세상 구경 ‘제보’가 필요해
별난 세상 구경 ‘제보’가 필요해
지난 8일 오전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본사 17층 회의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박진홍 피디 등 제작진 20여명이 모였다. 50여개의 제보 가운데 엄선된 11개의 제보를 검토하는 자리다. 100% 제보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인 만큼 제보를 선별하는 일은 엄정하다. 스토리가 있는 제보가 우선, 그림이 될 만한 제보는 뒤로 밀린다. 이날은 한 강아지가 다른 종의 동물을 돌보는 제보에 관심이 집중됐다.(그 종이 무엇인지는 비공개를 요청했다.) 박 피디는 “잡아먹기 전에 서둘러 취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방송사들이 제보를 확인하려고 돌아다니는 거리는 평균 1500㎞. 국외 제보 확인 절차까지 더하면 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들에게 제보는 ‘밥줄’이다.

■ 제보의 질적 진화, 양적 퇴보 <순간포착…>의 이영훈 피디는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춤을 추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미친 사람이 있는데 어떡하냐’는 제보가 주였다”며 “이제는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식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내 주위의 별난 사람들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호기심까지 갖게 됐다는 것 자체가 눈에 띄는 변화”라고 했다. 인식뿐만 아니라 형식의 변화도 있었다. 하루 평균 50여건이 들어오는 제보의 주종이었던 이메일 사연이 이제는 영상 제보로 패턴이 바뀌고 있다. 양윤재 피디는 “예전에는 소외되고 버려졌던 사람들의 사연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진화”라고 말했다.

문제는 제보의 수량. <티브이 특종…>의 김석현 피디는 “3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며 “대부분 자신을 잘 알릴 수 있고 강호동처럼 옆에서 받쳐주는 진행자가 있는 예능물을 선호해 제보 프로그램 제작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개그콘서트>에서 ‘달인’이라는 패러디 개그 코너까지 생길 만큼 화제를 모았던 <생활의 달인>의 경우도 제보보다는 아이템 중심으로 사업장, 공장 쪽을 취재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순간포착…>의 양 피디는 “더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허탕은 필수 <티브이 특종…>의 김 피디는 캄보디아에서 뱀을 날로 뜯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지로 찾아갔다. 사전 조사를 마친 상태여서 마을만 찾으면 되는 상황. 하루 종일 캄보디아 산골을 헤매다 도착한 마을에서 촌로는 한마디를 남겼다. “당신 같으면 먹겠냐.”

다른 방송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국 같은 경우 취재원이 “잠깐 고향 갔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다 알아보니 그 고향은 기차로만 이틀 걸리는 지역이었다. 동남아 오지로 취재를 갔다가 사냥 나간 집주인이 행방불명돼 촬영을 접은 적도 있었다. 이렇게 허탕 치는 경우가 10번 가운데 1번은 기본. 서너 꼭지로 구성되는 회당 방송 분량을 고려할 때, 1할의 실패 확률은 피가 마르는 고역이다.

이때 제작진은 배수진을 친다. 방송 분량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활의 달인>의 김진아 작가는 “유유상종이랄까. 달인 옆에 달인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달인이 제 구실을 못할 경우 옆 사람을 수소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료 썰기의 달인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20년 경력의 주방장이 손을 베고 피가 나면서도 “괜찮다”를 연발해 제작진을 당황하게 한 순간, 그때 옆에서 음식 준비를 돕던 다른 주방 일꾼의 칼솜씨가 눈에 띄었다. 3년 동안 파만 썰어온 주방보조는 파 썰기만큼은 제보자보다 더 달인이었다. 생활 습관이 특이한 달인, 기인들은 대부분 예상치 못했던 다른 특기를 지닌 경우가 적지 않다. 보통 이삿짐센터 직원보다 두세 배의 이삿짐을 더 실어나를 수 있다고 했던 한 제보자의 경우 실제로는 보통과 별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추궁(?) 끝에 “마늘 얇게 써는 것도 얘기가 되냐”는 ‘실토(?)’로 ‘마늘 썰기의 달인’으로 출연한 사례도 있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한국방송 제공

■ 제보 선별 3원칙

⊙ 부모 말은 의심하라

제보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중요한 첫번째 과제는 선별 작업이다. 교육열 높은 나라답게 제보 상당수가 ‘우리 아이는 천재’라는 류다. 돌 지난 아이가 피아노곡을 연주한다든지(음악 천재), 한 개그 코너만 보면 꼭 흉내를 낸다든지(개그 천재) 등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이유로 방송사마다 공통된 제보 선별의 1원칙은 “부모 말은 일단 의심한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확인하러 찾아가면 대부분 “하필 오늘만 안 한다”는 말을 듣는 때가 허다하다. 그래서 일단 부모의 제보에는 주변 이웃, 친구들의 연락처를 받는 게 필수다.

⊙ 신기한 기계? 뜯어보라

‘칼질’이나 ‘요리 빨리하기’ 등 조리 기술에 관한 제보도 가급적 기피하게 된다. 식당 홍보인 경우가 상당수고, 주방장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아무런 이유 없이 가전 제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든지, 작동 오류를 한다든지 하는 등의 제보도 실패 확률이 높다. <순간포착…>의 이 피디는 ‘피디는 해결사형’이라고 분류했다. 지난겨울 오디오 데크에서 무엇을 틀어도 모차르트 음악만 나온다는 제보를 받고 확인하러 갔다가 오디오를 뜯어보니 클래식 시디 한장이 안에 박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양 피디는 “그런 때는 꼭 수리를 해주고 돌아온다”며 웃었다.

⊙ 도인을 멀리하라

또 봄철, 가뭄 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비를 내리게 해준다’는 도인들의 제보도 전파를 타지 못하는 아이템이다. 계룡산, 속리산 등에서 온 도인들은 대부분 “비를 오게 해 보시라”며 돗자리를 깔아주면, 한참 뭔가를 하다가 “오늘은 감기에 걸렸다”거나 “몸 상태가 좋질 않다, 날을 따로 잡아야 한다” 등의 이유를 대기 일쑤다. 이들은 그 뒤 비가 오면 “나의 영험한 능력으로 비가 왔다”고 항의성 전화를 하곤 한다. 방송사의 제보 감별은 현장 확인이 원칙이다. 제작진들의 한결 같은 의견은 이렇다. “시간과 장소만 알려주시면 출동 대기입니다. 세상 곳곳 사연들은 아직도 끝이 없죠.” 하어영 기자

한겨레 주요기사
▶ 권양숙씨 “13억원 내가 받았다” 진술
▶ 조선일보-의원 소송 번진 ‘장자연 리스트’
▶ 유치장 감시소홀 틈타 피의자 2명 도주
▶ 소말리아 해적 앞에서 작아지는 미국
▶ 별난 세상 구경 ‘제보’가 필요해
▶ 12일 현재 노후차 보유자만 ‘새차구입 감세’
▶ 모터쇼 100만명 찾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