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석
10회 넘기며 몸살나는 웃음
“그동안은 사실 좀 헤맸죠”
“그동안은 사실 좀 헤맸죠”
‘지붕뚫고 하이킥’이 건진 시트콤 신인 정보석 “헤맸다.” 연기 생활 24년. 정보석은 다음의 네 장면 때마다 이 말로 인터뷰를 열고 닫았다. 운동선수 출신의 무능한 사위로 열연중인 문화방송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월~금 저녁 7시45분)에서 장인 이순재와 자신을 비교할 때(스스로 감히 자신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드라마 초반 캐릭터 구축을 위한 피디와의 교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김병욱 피디의 오랜 팬이라는 말과 함께), 김병욱 피디 작품에 등장했던 이전의 아버지 캐릭터들과 비교할 때(박영규, 노주현 등과 분명히 다르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할 때(못하면 가감 없이 비판해 달라는 말과 함께). “보석이라는 인물이 와 닿지 않더라구요.” 20여년 동안 주연급 출연 드라마만 40여편, “헤맸다”고 자신을 낮추는 게 어색할 정도의 이력을 가진 중견이 쉽게 꺼낸 말은 아니었다. “신인의 자세로 임하겠다”던 제작발표회의 약속을 지키려는 듯 그는 자신의 부족함에 솔직했다. “흉내를 낼 수는 없잖아요. 그 인물을 내 안으로 가져와서 느꼈어야하는데….”
지난 2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문화방송 스튜디오 현장, 그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제 겨우 ‘보석’과의 통로를 만들었다 싶었는데….” 몸살이 걸렸다고 느낀 순간을 ‘9월18일 밤 10시께’로 기억하고 있을 만큼 몸 관리에 철저한 그지만 몸살은 쉽게 물러가지 않는 듯했다. 보석의 보석 연기는 10회를 넘어서면서 ‘빵’ 터졌다. 이순재에게 바통을 넘겨받는 듯 극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캐릭터가 모두 살아야 하는 시트콤에서 비중 욕심을 내는 게 무리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17회에 비중이 좀 있다. 처남을 천재로 생각해 좌충우돌하는 게 볼만할 것”이라고 귀띔하는 모습은 스스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자신감으로 비치기도 했다. “운동선수들이 덩치만 컸지 현실순응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 생활을 겪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죠. 자기 포지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니까….” 시트콤 속 정보석은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분란에서 한걸음 비켜서고, 갈등을 회피하면서 약간의 무시나 모멸감 정도는 ‘이 정도면 행복하니까’라며 넘어간다. 자신의 위치나 자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캐릭터라는 설명이다. ‘바보’ 캐릭터가 한 세대를 대변할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 그의 인물 해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대조영>의 이해고나 <신돈>의 공민왕 등 선 굵고 점잖은 역에 익숙한 그에게 남은 숙제는 극에 녹아드는 몸연기. 슬랩스틱까지 불사해야 하는 시트콤에서 그는 신인·중견을 아우르는 동료 연기자들을 교본으로 삼았다. “요즘 신인 연기자들 모자란다고 흠잡으려고만 하지 그들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재치 있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황정음, 최다니엘 등 신인들 칭찬을 빼놓지 않는다. 물론 그에게 최고의 교과서는 ‘이순재’다. “방귀를 뀌거나 몸이 날아오르는 슬랩스틱을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안에는 액션 배우가 발차기할 때 미리 준비 동작을 해야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가 숨어 있어요. 동작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연구해야 방귀가 아니라 방귀 뀌는 상황이 주는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죠.” “헤매지 말자”를 외치며 촬영 현장으로 향하는 정보석은 24년차 신인이었다. “1년에 드라마를 한 편 이상은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고 했지만, 그의 매니저는 다른 한마디를 얹었다. “사실 휴식기간 동안에도 쉬지 않으세요.” 1년 동안 2편 이상의 연극 무대에 오르는 일이 정보석이 말하는 재충전이자 휴식이었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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