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저에게 웃음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행복한 미래를 그려보라는 임상심리학자의 요구에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남편은 아내의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눈을 감고 10년 전을 돌아가도, 신혼 때인 20년 전을 상상해도 끝내 남편은 스스로 아내의 미소를 그려낼 수 없었다.
싸움만 보여주던 ‘부부관계 프로’ 전형 탈피
상담·치료 집중하면서도 극적 효과 안놓쳐
지난 5일 경기도 양주의 한 촬영 현장, 문화방송의 <4주후애>(목 저녁 6시50분)에 출연한 부부의 심리 치료가 진행중이었다. 이어진 아내의 ‘분노 치료.’ 여섯 가지 색깔의 천 가운데 남편을 상징하는 색깔로 택한 것은 검은색, 그 앞에서 가장 화가 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에 아내는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미 이혼을 결심한 아내가 쌓아 놓은 벽은 높고 단단했다. “도대체 뭘 기억하라는 거야!” 아내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정적이 흐른 지 5분여가 지난 뒤였다. 남편을 상징하는 천 위에 몽둥이를 내리치며 계속 흐느끼기 시작했고, 아내는 20년 동안 담아두었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날 진행된 ‘캠프’는 <4주후애>가 다른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갖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1박2일의 캠프는 임상심리학자 등 전문가 참여로 진행되며 3주 동안의 관찰과 심리 상담을 통해 각각의 부부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33회 방송 예정인 김동석·양인자씨 부부의 캠프는 심상 치료, 분노 치료, 유서 쓰기, 재무 상담, 주관적 현실 인정, 대화법 등으로 구성돼 이튿날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캠프에서 보듯 <4주후애>는 주로 부부의 ‘싸움’을 보여주는 기존 부부관계 해결 프로그램에서 한걸음 나아가 갈등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식의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자연스레 솔루션 부분이 강화되고 방송 시간 45분 가운데 절반 이상은 상담과 치료의 장면으로 채워진다. 솔루션 부분의 비중이 높아 계몽적이거나 지루할 것이라는 우려는 편견에 불과하다. 자신이나 상대방을 돌보지 못해 생긴, 작은 오해들이 빚어낸 갈등의 골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는 낯설고 생소했지만 출생의 비밀이나 감춰진 외도를 폭로하던 과거의 프로그램보다 더 극적이다.
연출을 맡은 김영호 피디는 “아내가 수십년 동안 받아온 것이 무시가 아니라 의심이었다는 사실, 가족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남편의 폭력 성향이 강한 자존심이 아니라 낮은 자존감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부부는 당혹해한다”며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한 자신이나 상대를 뒤늦게나마 알아가는 과정이 갈등을 푸는 실마리가 된다”고 말했다.
치료의 과정인 만큼 갈등의 내밀한 부분을 건드리는 부분에서 방송으로 내보내지 못할 만큼의 내용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부부 사이의 성(性)문제는 갈등 상황인 경우 빠지지 않는 문제다. 김 피디는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이 또한 소통의 방법을 모르거나 왜곡된 지식을 오랫동안 갖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방송으로 나갈 수 있느냐와는 무관하게 솔루션은 반드시 진행한다”고 말했다.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치료가 진행되지만 제작진이 말하는 가장 효과적인 솔루션은 대화법을 익히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관찰-느낌-열망’의 공식에 맞춰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차지현 작가는 “‘이 웬수야. 술 끊는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또 술이냐’는 말을 ‘술을 먹었네(관찰). 걱정돼, 불편해(느낌). 술을 줄였으면 좋겠어(열망)’라는 식으로 바꾸면서 곧바로 분위기가 달라진다”며 “우리가 아이들에게 대화 방식을 가르칠 줄만 알았지 스스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4주 동안의 촬영이 끝나면 조정위원회가 열린다. 변호사 입회 아래 전문가들은 부부가 지켜야 할 원칙들을 공표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일주일에 한 번 해주기, 하루에 두 번 칭찬하기 등 규칙들은 매우 구체적이다. 다만 실직으로 인한 갈등, 양육의 문제 등에 대한 결론이 구직 활동이나 가사 분담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퇴행하고 있는 지금, 퇴행의 수준에 맞는 해결법인 것 또한 사실이다.
양주/글·사진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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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사인도 출연자 뜻대로
제작진 “분칠하지 말자” 촬영 원칙 ‘상처 덧날까’ 시청자게시판 폐쇄도
현장에서 만난 김영호(사진) 피디는 까칠했다. “솔루션 프로그램이 아니라니까요. 사람 이야기를 담은 휴먼 다큐죠.”
그는 자신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끝에 붙는 말은 “아님 말고”였다. 이런 까칠함은 인터뷰 내내 계속됐다.
김 피디는 “한 인간이 지녀온 수십년 동안의 습성을 한 달 만에 바꿀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오만이고 그릇된 것”이라며 “다만 그들에게 스스로를 깨닫고 상대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가능성을 발견하면 족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아님 말고”다. 하지만 그의 ‘아님 말고’식 냉소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그 말이 주로 소통의 한계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에 대한 동정이나 계몽이 아닌, 그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의도 또한 감추고 있는 셈이다.
“분칠하지 말자고 말해요. 우리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가지 말자는 거죠.”
실제로 이날 촬영에서도 출연자들에게 치료를 제외한 다른 상황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4주후애>는 설정이라고 의심을 살 만큼 출연자들은 치료 과정을 통해 ‘울고 웃는다.’
“일종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죠. 미술 치료, 음악 치료 등 낯선 상황에 들어선 출연자들이 처음에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방아쇠 당기는 것처럼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일순간 감정이 폭발해요. 이 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죠. 때로는 출연자 자신도 예상치 못해 스스로에게 당황해하기도 하구요.”
그는 참가자들에게 적용되는 (정신과적) 치료 기법에 대해서도 ‘솔루션’ 대신 ‘서비스’라는 표현을 썼다. “스스로 갈등 ‘해결’을 위해 찾아온 만큼 서비스를 충실하게 제공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구요.”
그의 말대로 촬영은 철저히 출연자의 뜻에 따라 진행됐다. 이날 촬영도 출연한 부인의 요구로 중단되기도 했다. 김 피디의 이런 서비스 정신은 <4주후애>의 시청자 게시판을 폐쇄한 결정에서도 드러났다. “방송 뒤 혹시나 출연자들이 프로그램 게시판을 보고 상처를 받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거나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보다 출연자들을 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김 피디는 “출연자들이 하는 싸움만 구경하지 마시고 그들이 반목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봤으면 좋겠다”며 “그런 점에서도 출연자들은 우리에게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양주/글·사진 하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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