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참 나쁜 프로그램, SBS스페셜 ‘나도 완장을 차고 싶다’

SBS 사진

SBS 창사특집 ‘출세만세, 2부 나도 완장을 차고 싶다’를 보았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던 일곱 명의 남자가 '완장촌'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남자들은 마치 훈련소에 입소하는 장정들처럼 무표정한 표정으로 버스에 차례로 탑승하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영화의 한 장면같은 설정이지만 이런 도입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였다. TV를 켜면 꼭 나오는 식상한 연예인들이 아닌, 일반인들을 모아 놓고 어떤 상황을 부여할 것이며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무척 궁금하였다. 그래서 아내와 고3이 되는 아들, 고1이 되는 딸까지 우리 네 식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

설정은 단순하였다. 프로그램은 외부와 격리된 ‘완장촌’이라는 공간에서 1인의 완장에게 절대권력이 부여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이 과제로 부여되는 과정에서 한 명의 완장과 나머지 여섯 명 남자들의 심리와 행동을 제 삼자의 시점에서 관찰하도록 하는 리얼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제작진에서 부여한 ‘12 강령’이라는 규칙은 이곳을 현실의 법과 관행이 미치지 않는 별도의 구역으로 만든다. 이곳에서 보여진 일곱 남자들의 행동은 일견 수긍이 가는 것도 있었고 보기에 불편한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완장을 정하기 위해 지렁이를 먹는 장면, 전임 완장의 뺨을 때리는 장면, 산 닭을 잡아 먹는 장면 등은 보기에 몹시 불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그램 안내 홈페이지를 보니 이런 장면들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동물보호협회에서는 고발까지 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의 상당 부분도 이와 같은 자극적 영상들을 보여주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SBS 사진

남자들은 같은 종류의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위 사진에서 보듯 일곱 남자가 입었던 복장은 무슨 컨셉이었을까? 군대 시절 '야전잠바' 속에 입었던 내피를 연상하게 하는 옷을 입혀 놓고 가슴에 식별 번호를 붙이게 하여 어떤 효과를 기대했던 것일까? 프로그램 시청 내내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단적으로 말해 이 복장을 생각해 낸 연출자의 의도는 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시청자의 불편함과 닿아 있다. 몇

가지의 자극적인 영상 외에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연출자의 기획 의도였다. 색다른 시도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조악한 구성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함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SBS의 홈페이지를 보니 ‘나도 완장을 차고 싶다’는 완장을 차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일곱 남자들의 이야기를 빌려 진정한 출세를 고민해보고 ‘명예와 권력’의 가치를 찾아 ‘행복한 한국인’이 되는 제시하려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한다. 출세에 반드시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권력구조는 무엇이고 완장으로 상징되는 출세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성찰하기 위한 상황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연출자는 ‘완장이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 그리고 완장을 찬 권력이 바꾸어 놓는 풍경들을 보려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연출자의 기획 의도는 적절치 못했으며 프로그램 역시 실패작이다. 우선 기획 의도는 왜 적절하지 못했는가? 연출자는 '완장'으로 상징되는 권력 구조와 완장을 둘러싼 인간의 심리를 사례를 통하여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출자는 출세가 우리 마음 속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성찰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했지만 정작 연출자의 성찰이 부족함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완장'이라는 상징에 꿰어 맞춘 꼴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완장'이라는 매개물만 차용되었을 뿐 연출자가 말하는 출세에 수반되는 권력구조 혹은 성찰이 드러나지 않았다. '완장'이라는 매개물이 주는 유인가와 프로그램이 주는 자극에 집착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연출자의 기획의도 혹은 프로그램 내용이 좀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일곱 남자들을 모은 기준이 무엇인가가 드러났어야 한다. 그 일곱 남자는 우리 사회 성인 남자들을 평균적으로 대표하는 인물군인가? 내가 볼 때는 어딘가 모르게 작위적이었으며 리얼 다큐라는 설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연기'의 냄새가 났다. 이 역시 인터넷을 뒤져 보니 작위적 구성의 흔적이 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개그맨, 혹은 무명 연극 배우를 섭외한 이유가 무엇인지...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관련하여 해명되어야 할 대목이다.

몇 몇 선정적인 장면에 대하여 시청자들의 항의가 있지만 나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은 일곱 남자들의 의사소통 방식 혹은 그것에 관한 설정이었다. 아마도 몇 가지의 상황과 미션이 주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프로그램 구성 상 이해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의식을 가진 남자들 일곱을 모아놓았을 때 그것이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듯 원초적 본능과 경쟁 의식만 난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세 명의 완장이 교체되는 동안 한 명 정도는 구성원들의 의사를 모으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실패이다.

원초적 경쟁과 권력에 대한 집착만을 부각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정말 우리 사회의 남자들이 프로그램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합리적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저 본능에 따라 일차적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소통 능력이 전무한 사람들인가? 만약 이 프로그램이 이같은 판단을 전제하고 제작되었다면 이는 시청자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프로그램이 제작 의도와 영상 모두에서 오만과 편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몇 장면의 영상을 보여준 후 삽입되는 나레이터의 발언은 또 어떠한가? 리얼 다큐를 표방했으면 충실하게 그들의 면모를 추적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완장이 바뀔 때마다 확신에 찬 판단을 서슴없이 내어 놓는다. 완장1은 유약했다. 완장2는 카메라 앞에서 강하고자 하였으나 동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려 하지 않았다. 완장3은 체계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구성원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의적 판단 일색이다. 완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나 완장이 되려 했던 동기 모두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있지만 어찌되었던 판단은 시청자의 몫으로 돌려야 했다.

급기야 프로그램은 나레이터의 클로징을 통하여 확신감에 찬 결론을 들이민다. "당신은, 당신의 리더는 완장촌의 그 누구와 닮았는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출세하길 원하는가?"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제작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감정이 이입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클로징은 프로그램의 질을 드러내고 있다. 즉, 시청자의 의사소통 능력이 수준 이하라는 것을 받아들이길 강요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불쾌하다. '완장'이 표상하는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와 출세 지향에 관심을 가져본 시도는 그럴싸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거칠고 조악했으며 시청자의 최소한 소통 능력에 미치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연출자는 실험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들을 무시하였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타인을 밟고서라도 유리한 위치에 올라설 것이다라는 전제를 미리 설정하고 실험이 아닌 연출을 하였다. 순수한 실험이었다면 애초부터 필요하지 않았던 '12 강령' 같은 것을 제시하여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쪽으로 끌고 가지 말았어야 한다. 오락 프로라면 재미가 없고, 교양 프로라면 참 나쁘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리더는 완장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이 프로그램의 제목 '출세만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꼬집기 위해 쓴 것인가? 아니면 현대인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덕목으로 쓴 것인가?"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