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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막내린 KBS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 상서’

등록 2005-06-08 18:35수정 2005-06-08 18:35



36.5℃ 온기만으로…시청자 마음 데웠다

한국방송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 상서>가 지난 5일 끝났다. 68회까지 평균 25%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내내 높은 등수를 차지했다. 평가도 좋다. 작가 김수현의 힘이 진면목을 발휘했다. 역시 아버지가 중심에 놓인 대가족이 드라마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김 작가가 그려온 대가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만인의 투쟁’이 ‘온정적 화합’으로 달라졌다. “따뜻한 드라마”였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까닭이다.

일상의 잔잔한 감동으로 높은 시청률
권위 벗은 자상한 아버지상 등 보여줘

따뜻한 정=욕심 없이 청빈하게 살아가는 대가족의 일상이 소박하고 따뜻하게 그려졌다. 감각적인 자극이나 무모한 판타지는 없었다. 지극히 ‘일상적’이라는 설정은, 현실의 존재 여부와는 무관하게 우리 주변 이야기처럼 다가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케 했을 법하다. 자본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나도 모르게’ 소외된 자아는 조용하고도 안온한 가족의 품이 그리울 터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수준에서 따뜻한 인간 관계를 강조해, 생활 속 잔잔한 재미를 잘 드러낸 드라마”라는 평가가 적절하다.

중심에는 매일 저녁 ‘부모님 전 상서’를 쓰는 안 교감이 있었다. 안 교감은 ‘가부장적’이지 않은 ‘가부장’으로 그려졌다. 권위보다는 사랑으로 자식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아버지였다. 이런 캐릭터는 김 작가의 전작들의 그것과 한참 떨어져 있다. <사랑이 뭐길래> <내 사랑 누굴까> <목욕탕집 남자들>의 아버지들이 가족들을 향해 쏟아붓던 험한 소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대발이 아버지’로부터 10여년, 안 교감이 나왔다. 그러나 깐깐함이 자상함으로 바뀌자, 강압된 굴복은 자발적 복종으로 탈바꿈한다.

가족주의=극 중 막내 성미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부모를 속이자, 둘째 아들 정환이 “우리 집 자식들이 할 일이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첫째 성실도 이혼에 이르나, 줄곧 망설이던 가장 큰 이유는 부모였다. 그런 자식들에게 안 교감은 항상 끝없는 신뢰를 보낸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를 모범생으로 만들었는지, 거꾸로인지 알 순 없지만, 아버지의 무자비한 억압과 이에 따른 자녀의 어쩔 수 없는 굴복은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 가족 해체가 거부 당한 전통적 가부장에서 기인했다 할 때, 김 작가가 제시한 해법은, 쥐고 흔들지도 않고 고개 숙이지도 않은, 털어놓고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새로운 ‘아버지’다. 위기에 빠진 가족의 구심점으로 새로운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작가적 호소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 캐릭터의 한계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져도 집안 일에 파묻히는 며느리이자 아내일 뿐, 있을 법한 저항은 찾아볼 수 없다. 나이든 여성들이 하나같이 드세고 거칠게 표현되는 것도 예전 김수현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보수의 힘=낡았다고 치부되던 보수적 가치관이 새 옷을 꺼내 입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 아버지의 변신이 보여주 듯,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자기 반성과 변화가 엿보인다. 많은 이들이 <부모님 전 상서>에서 남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낀 것도 그래서다. 이는 가짜 보수와 고집스런 수구가 판치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이른바 사회지도층들이 병역 기피를 위해 제 자식의 국적 이탈을 이용하는 몰염치와 부의 사회환원보다는 세습에 몰두하는 가진 자들의 이기적 행태 따위에 많은 이들은 분노한다.

<부모님 전 상서>가 ‘따뜻한’ 보수주의를 내세운 문제의식이다. 성실은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힘겹게 키워내, 남편이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까지 고쳐낸다. 또, 재벌그룹 회장인 아리 아버지는 전 재산을 장애인 무료 병원 건립에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 부잣집 딸로 금지옥엽 자라난 아리 또한, 일반적 관념과 달리 얄밉지만 넉넉한 품성을 지닌 귀여운 여성으로 그려진다. 자상한 아버지의 손자가 자폐아이고, 그의 사돈이 기득층의 사회적 구실을 중시하는 재벌 회장으로 설정된 것은, 사회 성숙에 따른 대중의 인식 변화를 감안한 것이다.

노련한 작가의 조용한 변화가 시청자들을 잡아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은밀히 손을 뻗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위해를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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