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
‘위기일발 풍년빌라’ 극본 쓴 장항준 감독
해가 중천에 떴다. 머리를 스치는 술자리의 기억, “나도 대본료 토해낼 겁니다!” ‘꿈이겠지.’ 장항준 감독은 몸을 일으켰다. 전화가 울렸다. 조현탁 피디(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 연출)였다. “형, 어제 술자리 기억나죠? 나 입금했어요.” ‘아…, 꿈이 아니었구나.’ “나는! 나는!” “형한테도 대표님한테서 전화 갈 거예요.” 첫 제작사의 부도, 제작 중단, 피디의 연출료 반환(장 감독은 비장하게 ‘말로만’ 반납) 등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티브이엔·금 밤 11시)를 제작한 2년 동안의 기억들이 장항준 감독의 입을 통해 때로는 궁상맞게 때로는 애절하게 펼쳐졌다. 지난 3일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장 감독과 벌인 인터뷰는 한판의 1인극이었다. 황금 둘러싼 인간군상 이야기
“정치적? 현실이 그렇지 않나요” “황금을 좇는…, 완전히…, 더러운 세상,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습니까…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사회의 혼탁과 부도덕이 누구의 책임인가요? 우리가 꼭 피해자이기만 할까요? 가해자는 아닐까요? 나와 옆 집 사람이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내용은 심각한데 코미디 대사를 읊듯 문장을 도치시키고 발성을 조절해가며 웃음을 유발한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그래서 어떤 드라마죠?” 물었다. <…풍년빌라>는 복규라는 한 인물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유산인 쓰러져가는 빌라 한 채,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500억원어치의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는 20부작(각 45분)으로 전개된다.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썼어요. 지금 유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막장, 블록버스터 등 이런 한국 드라마의 트렌드가 너무 싫더라구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위기일발 풍년빌라’ 주연을 맡은 이보영·신하균.
그래서 ‘찌질한’ 캐릭터인 주인공 복규(신하균)의 존재는 중요하다. “모든 상황, 거기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이 욕망의 산물들이죠. 욕망이 충돌하고 갈등하고, ‘사회생활을 너무 어둡게 보는 것 아냐?’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현실 아닌가요?” 정치적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는 말에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면 그게 가장 정치적”이라고 답한다. 장 감독은 4부(예정)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바람을 피우는 매자라는 인물이 회개하기 위해 찾은 교회의 목사 역이다.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면서 외치면 정작 매자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폭로되죠. 하하하.” 정신없이 한시간 반이 흘렀다. 인터뷰 장소는 그가 연출한 연극 <영화의 탄생>의 연습장, 배우들이 모였다. 장 감독은 4월에 막이 오르는 연극을 끝낸 뒤 여름에는 영화 한 편을 만들고, 바로 뒤이어 드라마를 연출할 계획이다. “후배 하나가 영화, 연극, 드라마, 연출의 그랜드 슬램이라며 놀리던데요. 연말에 나올 드라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들의 이야기입니다.” 연말 드라마 대본은 이번 <…풍년빌라>의 대본을 공동작업한 부인 김은희 작가가 집필중이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