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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최양락의 ‘훌륭히 유치한’ 그때 그 앨범

등록 2010-03-19 16:55수정 2010-03-20 09:32

최양락의 나이트 피버
최양락의 나이트 피버
실력파 뮤지션 대거 참여, 음악성 곁들인 ‘코믹’
닭살 트로트 창법에 허무주의적 내레이션 감동
그의 이름을 함부로 적을 수 없다.

‘네로 25시’의 황제 개그에서 ‘슈퍼차 부부’의 서민 개그에 이르기까지 그는 신분을 넘나드는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면 재미있는 희극인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괜찮아유’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충청도 말이 TV 드라마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사투리가 된 이유는, 쉬워보였기 때문이다. 사모님과 못된 맏며느리의 잔소리를 감내하는 서산댁과 회당 두어 줄의 대사량을 소화한 연탄가게 이씨 등은 하나같이 엉터리 충청도 말을 써야 했다. 그러나 ‘괜찮아유’는 말끝에 “~유”만 붙이면 충청도 말인 줄 아는 경박한 풍토에서 억양만 얄팍하게 흉내내는 것이 아닌, 혼이 서린 사투리와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건 볼 수 있음직한 캐릭터, 그리고 도도한 휴머니즘의 정서를 품은 로컬 리얼리즘 코미디의 정수였다.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있는 희귀앨범 ‘걸작으로 받들라’

최양락
최양락
그래도 거기까지였다면 좋은 코미디언들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알까기’와 ‘재미있는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바이오그래피를 충실히 채워갔지만, 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 [작품하나]로 거둔 대중적 성공에 머물지 않고 전대미문의 실험을 감행한 음악작품을 통하여 그는 비로소 선생님이 되었다. 근래에 비록 음원으로나마 다시 들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선택받은 자들만이 소중히 간직하며 (자기들끼리) 걸작으로 추앙한 작품, 2001년에 발표된 [Night Fever!!!]이다.


윤태원 프로듀서부터 심상치 않는 인물이었다. 음악 감독을 맡은 세인트바이너리(Saint Binary)와 함께 참여한 팀 토마(Team MOMA)의 정체는 테크노계를 이끌어가는 실력파 뮤지션들인 이스트포에이(east4A), 전자맨, 프랙탈(Fractal)이었다. 여기에 함춘호의 기타와 스트링 세션마저 가세했다. 그러니 이 웃기려고 만든 앨범은 웃기기만 하기엔 수준급이었고, 수준급의 음악이라기엔 훌륭하게 유치했다. 다른 말로 유치함과 음악성이 결합된 전무후무한 코믹 앨범으로 2000년대 초에 양산된 어지간한 댄스 가수들의 음반들보다 나았다.

‘우주소년 짱가’의 현란하고 정교한 루프와 ‘그랜다이저’의 완성도 높은 편곡이 예증하고, 서정어린 멜로디라인의 간주와 뽕짝 보컬이 만난 ‘메칸더 V’는 감성까지 자극한다. 훗날 범람할 샘플링을 고즈넉한 기타 연주로 선보인 ‘엄마 찾아 삼만리’의 우스꽝스러운 노래 뒤편에 예스러운 여성 코러스까지 진지하게 수놓이면서 기묘한 카타르시스가 조성된다. 오래 전 학교에서 경험한 ‘명상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아기 공룡 둘리’에 이르기까지 [Night Fever!!!]는 규정을 거부하는 전위적인 작품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였다면 완성도 높은 코믹 앨범들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애국가 4절까지 끝끝내 부르고야 마는 ‘장인 정신’

히사이시 조 풍의 인트로에 이어 넥스트(N.EX.T)가 울고 갈 장엄한 신스 터치와 드라이브감 넘치는 테크노 댄스의 향연이 펼쳐진 ‘개구리 왕눈이’는 멍키헤드(Monkey Head)와 새드 레전드(Sad Legend)의 리메이크를 능가하는 명곡이다. 스웨덴의 쎄리온(Therion)이 한창 시절 구사한 그로테스크한 코러스를 MBC 어린이 합창단과의 앙상블로 구현한 장면은 단연 백미이며, 특히 닭살 돋는 트로트 창법에 이어진 “왕눈이는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를 알았고 둘을 알려주면 둘을 알았습니다”라는 허무주의 성향의 내레이션은 감동의 눈물을 자아낸다.

마지막 트랙에서 ‘애국가’를 끝끝내 4절까지 들려주고야 마는 장인의 고집까지 담긴 이 작품은 뒤늦게 진지한 음악 양식에 키치 혹은 개그 코드를 조합해보고 있는 후대의 젊은 음악인들을 지엄하게 꾸짖고 있다. 이보다 골 때리는 앨범은 이후 10년 동안 없었다. 그리고 향후 10년 동안에도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웹-타운가를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켰고, 장중한 코러스를 동반한 당대 최고의 싱글 ‘당근쏭’도 실린 [꼬마네티즌 엽기쏭+기쁜 우리 동요]와 같은 ‘저주받지 못한 걸작’마저도 결국 [Night Fever!!!]의 숭고한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제 뒤늦게 이름을 고이 적어본다. 그가 바로 최양락이다. /나도원 음악평론가

◎ 나도원 = 음악평론가. 중력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다른 말로 잠이 많다. ‘가슴’ 편집인, ‘컬처뉴스’ 대중음악전문기자, ‘보다’ 기획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중음악채록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프레시안’, ‘경향신문’에 글을 연재하는 등 여러 지면과 문학지, 미술지에도 글을 써왔다. 뮤직페스티벌 광명음악밸리축제(2005-2006)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고,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한겨레 음악웹진 <100비트> 맛 보세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른 시각으로 ‘변주’
트위터와 미투데이에서도 귀 열어두세요
 

<한겨레>와 박은석, 김작가, 김현준 등 20여명의 젊은 대중음악평론가들이 함께 만드는 대중음악 웹진 <100비트>(www.100beat.com)가 17일 시험판(베타 서비스) 문을 열었다.

‘모든 음악 다른 시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살아있는 진짜 음악이라면 주류·비주류, 국내·국외를 가리지 않고 두루 소개할 예정이다. 새로 나온 앨범 리뷰뿐 아니라 재미와 깊이를 갖춘 월간 기획, 음악인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낸다. 날마다 새로운 콘텐츠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험판 <100비트>에는 음악평론가 이민희씨가 쓴 피처 ‘지드래곤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으려다 만 이유’, 소녀시대 <오!>와 카라 <루팡> 리뷰, 미국 팝 밴드 오케이 고(OK GO)와 헤비메탈 밴드 건스 앤 로지스의 리더 액슬 로즈 인터뷰, 지난 1월 내한공연을 한 펑크 록 밴드 그린데이의 프로파일, 브리트니 스피어스와의 인터뷰 후일담 등이 실려 있다.

웹진 이름인 ‘100비트’는 록 음악에 많이 쓰이는 박자를 뜻하는 음악 용어이자 비틀스의 무명 시절을 다룬 영화 제목 를 변형한 것이다. 숫자 ‘100’으로 상징되는 다양한 음악과 다양한 시각을 아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100비트>의 로고는 음악을 상징하는 시디(CD)와 평론을 상징하는 펜을 함께 형상화한 것이다. 또 턴테이블에 걸린 엘피(LP)와 바늘을 상징하기도 한다. 단 한 곡을 듣더라도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하는 턴테이블은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리스너들을 떠올리게 한다.

<100비트>는 2주일 동안의 시험판 기간을 거쳐 오는 31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이날에 맞춰 <한겨레>는 전날인 30일 열리는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관련 별지를 발간해 신문과 함께 배달한다. <100비트>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인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통해서도 누리꾼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두 서비스 모두 아이디는 ‘100beat’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 한겨레 대중음악 웹진<100비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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