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방사-복원 다룬 다큐
좌충우돌 거쳐 내달 최종회
관련 영화·생태도감 준비중
그는 ‘반달곰 피디’다. 다큐멘터리 <자연으로 돌아간 반달가슴곰>을 연출한 유영석 피디(SBS·사진·44)는 회사에서 본명보다 이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동그란 얼굴, 선한 눈매가 제법 반달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반달가슴곰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자연으로 돌아간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해 멸종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10년 복원프로젝트이다. 2002년 첫 방송을 한 뒤 다음달 6일 마지막 편을 내보낸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했던 유 피디는 15년 피디 경력의 절반 이상을 ‘반달곰’에 바쳤다. 한 피디가 한 다큐 아이템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찍어온 것 자체가 드문 일이다. 그는 어쩌다가 반달곰 피디가 되었을까.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자연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야생동물이 없을까 궁금해졌어요. 그게 계기였죠.” 한국의 대표적 야생동물이지만 현대에 들어 자취를 감추게 된 반달곰으로 관심이 향했다. 자료를 찾으며 혼자 6개월 넘게 공부하다가 마침 반달곰 복원연구를 하던 국립환경과학원 김원명 박사를 만나 지금이 반달곰을 복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들었다.
환경부의 도움을 받아 2001년 9월, 생후 8개월 된 반달곰 네 마리를 지리산에 시험 방사했다. 7개월 이하면 너무 어려 못 살고, 9개월이면 사람과 너무 친해져 야생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달곰이 멸종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최소 개체수는 50마리. 4마리는 어느덧 19마리가 됐고,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새끼를 낳는 성과도 얻었다. “미국이 늑대 복원에 30년, 러시아가 야생곰 복원을 40년째 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정말 빠른 성과입니다. 하지만 복원은 천천히 진행될수록 좋습니다. 자연도 동물도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빠른 성과가 불안합니다.”
자연 다큐멘터리가 처음인 그도, 야생이 처음인 반달곰도 전반전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곰들은 등산객이 설거지를 하면 내려와 구경했고, 스님 거처에 들어가 쌀통을 뒤지기도 했다. 벌통을 건드려 주민들의 성토가 쏟아지는 위기도 있었다. “뉴스에까지 났어요. 야생동물은 사람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근접 촬영을 많이 해 사람 냄새에 익숙했던 겁니다. 그 뒤부턴 멀리서 지켜보거나, 무인카메라로 찍으면서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농민들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설치한 올무에 반달곰 4마리가 죽은 것이다. “반달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산에 있는 올무를 모두 없애야 합니다. 산에서 야호라고 소리 지르는 것도 임신한 야생동물들을 놀라게 해 유산시킵니다.”
촬영 초반 그는 6~7년을 지리산 근처에 집을 얻어 살았다. 방송은 1년에 한번이어도 1년 내내 관찰해야 해서다. 다큐멘터리 최초로 반달곰의 동면장면을 촬영한 2003년 3회는 시청률이 18%나 나왔다.
결혼 11년차인 그는 반달곰을 돌보느라 신혼을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로 지냈다. 10년 작업이 끝나 아내에게 미안함을 덜 수 있게 되었지만, 자식 같은 곰들과 헤어지는 것은 아쉽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동화책도 나왔고, 소설과 생태도감도 출판을 준비중이다. 그는 “시원섭섭하다”는 말로 10년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반달곰을 소재로 스리디 영화를 만들 거예요. 내용 한번 들어보실래요?” 정말 그는 ‘반달곰 피디’였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