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소식
일본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15번째 작품 <아웃레이지>는 폭력, 음모, 배신으로 얼룩진 야쿠자 영화. 16일 칸 영화제 언론시사회에서 첫선을 보인 이 영화는 폭탄주를 돌려도 철저한 서열과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우리사회의 어떤 조직을 연상시킨다.
도쿄의 범죄조직인 산노카이의 산하조직 소두목들이 오야붕의 주재 하에 어느 음식점에 모인다. 산노카이의 부두목 카토는 연회 뒤 이케다파의 소두목 이케다를 따로 불러 그가 감옥에서 무라세파의 소두목과 맺은 협약이 오야붕의 의심을 사고 있다고 귀띔한다. 오야붕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케다는 동급 소두목 오토모한테 도움을 청한다. 무라세에 대항해서 작지만 확실한 행동을 해 줄 달라는 것. 오토모는 어리버리해 보이는 부하를 시켜 무라세 구역의 한 술집에서 강제적인 바가지를 쓰도록 하고 돈이 모자란다며 무라세의 부하를 사무실로 유인해 직사하게 때린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산노카이 산하 계파 사이에서 돈과 권력을 잡기 위한 무작스런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계파의 소두목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합종연횡을 하면서 서열 싸움으로 변질되는데, 오야붕의 이이제이 정책에 따라 고만고만한 형편인 소두목들의 서열 싸움은 점점 확산돼 행동대원들은 물론 두목들이 서로 먹히고 먹으면서 차례로 사라지게 된다.
아웃레이지가 보여주는 범죄사슬에는 야쿠자와 결탁해 범죄를 눈감아 주거나 정보를 빼주고 돈을 챙기는 형사가 등장한다. 카타오카 형사는 야쿠자의 소두목을 ‘선빠이(선배)’라고 부르니 겉은 경찰이지만 야쿠자의 조직원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임무가 바뀌는 것은 야쿠자의 나와바리가 바뀌는 것과 같아서, 전근을 가면서 오야붕한테 인사를 가는데 오야붕의 돈봉투는 후임형사한테 돌아가고 카타오카한테는 국물도 없다. 자기조직이 아닌데 챙길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오야붕이나 소두목들은 모두 나쁜녀석인 동시에 각각의 특징이 있을 뿐이어서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조연들이 야쿠자가 조직을 위한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은 상대를 짓밟아야 자신이 올라가야 하는 까닭에 인정사정 없다. 키타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특정 등장인물들이 돋보이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없을 것 같지만 등장인물이 서로 얽히면서 영화는 오히려 단단해진다. 기존 야쿠자 영화가 대사가 적으며 등장인물의 행동이 쿨한데 비해 말도 많고 욕설을 자주 많이 끼워넣은 것은 그런 까닭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는 키타노 감독이 기왕에 손발을 맞춰 익숙한 배우들을 버리고 처음으로 기용한 배우들. 그런 탓에 촬영하는 동안에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시나리오를 고쳤다고 한다. 시나리오에 연기를 맞추기보다 그들의 장점에 맞춰가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살렸다는 평가다. 감독은 빨리 돌아가는 지금 시대에 배우를 틀에 부어넣기보다 감독의 의지를 바꾸어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
한국 감독 가운데 키타노를 스승으로 섬기는 감독들이 있는 만큼 관심이 갔던 영화. 하지만 야쿠자 영화도 바람이 있는 듯, 2004년 이래 6년만에 새로 낸 그의 트레이드마트가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 아무리 우리사회 밑바닥에 깔린 서열, 폭탄주 문화를 건드린다고 하지만...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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