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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아직도 성장통 겪는 수목 드라마 주인공들

등록 2010-05-19 15:52

‘신데렐라 언니’. 한국방송 제공
‘신데렐라 언니’. 한국방송 제공
20부작의 <신데렐라 언니>를 제외하고는 <검사 프린세스>와 <개인의 취향>이 이번 주로 막을 내린다.

그 어느 드라마들 보다 기대도 많았고, 그만큼 화제도 많았던 수목 드라마를 보내며 결산을 한번 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어느 드라마가 더 잘 만들었고, 누가 더 잘했으며 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세 드라마가 만나지는 공통적인 지점을 짚어보고 싶다.

보통 삼사의 드라마라고 하면, 요즘 월화 드라마처럼 한 곳에서 사극을 하면, 다른 곳에서는 시대극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를 하면서 시청률의 파이를 나누어 가지려고 하는 편인데, 수목 드라마는 각 방송국마다 자신들의 드라마에 가장 자신이 있었던 것인지 야심차게 여성층을 주 타깃으로 삼은 드라마를 선보였다.

개인의 취향의 경우는 당대의 가장 스타성이 높다할 이민호와 손예진이 로맨틱 멜로를 내걸고 등장했으며, 신데렐라 언니는 김갑수, 이미숙 등 쟁쟁한 실력파 중견들을 배경으로 시청률 불패의 문근영이 신예 서우와 옥택연, 천정정과 운명적 사각 멜로를 김규완 작가의 깊은 맛이 나는 대본으로 펼쳐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스타성이 약하다 평가 받은 sbs에서는 하지만 연기력에 있어서는 그 누구 못지 않은 김소연과 박시후를 두 주인공으로 시청률면에서 국민 드라마급 성공을 거둔 찬란한 유산 팀이 검사 프린세스란 독특한 장르로 맞받아냈다.

대체적으로 주부를 비롯한 다양한 층의 공감을 얻고 가는 신데렐라 언니가 타 드라마들에 비해 앞서는 모양새이지만, 그렇다고 월등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드라마의 추월을 허락할 정도도 아닌 수준으로 시청률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개인의 취향’
‘개인의 취향’
오히려 선남선녀의 알콩달콩한 로맨틱 물은 늘 젊은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내기 마련인데도, 개인의 취향의 경우, 최근 박시후의 서변앓이 붐을 일으키는 검사 프린세스의 막판 추격에 고전하는 있는 편이다.

물론 각각의 드라마는 각각 고유의 스토리와 배경을 가지고 진행을 시키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완벽한 성공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추노>나 <신이라 불리우는 사나이>처럼 확연히 남성들의 시선을 끌만한 드라마가 없는 한에서, 기본적으로 앞서 말했다시피, 나이가 많건 적건 여성들을 기본 타깃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혹자는 각 드라마가, 조금 더 다른 성격의 드라마와 만났다면 조금 더 흥행면에서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보면,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신데렐라의 송은조, 개인의 취향의 박개인,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 모두가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통이라........

이건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 이미 겪어 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더구나, 구대성이 죽은 대성 도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송은조, 가구 디자이너이자, 가구 브랜드의 대표인 박개인,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대한 민국 검사 마혜리,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진 전문직 여성들인데, 그녀들은 여전히 가족의, 부모의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송은조는 수시로 남자를 갈아대는 어머니 송강숙에 대한 애증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그녀 곁에서 떠나질 못하며(물론 드라마에서는 이걸 어머니에 대한 은조의 갸륵한 마음씨로 표현하지만, 어쨋든 엄마 곁에서 맴도는 건 맴도는 거다) 한 술 더 떠서, 양아버지 구대성의 그늘에서 허덕인다.(이 또한 물론 구대성의 그윽한 부성애에 대한 은조의 감복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결국 은조는 그녀와의 애증 관계인 의붓 동생 효선이와 힘을 합쳐 대성도가를 되살릴 것이다.

개인의 취향은 어떤가, 게이 남자 친구와의 티격태격 동거 스토리인가 싶더니 후반에 와서, 개인의 가족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결국 개인이란 여성이 지금 이렇게 상고재란 오래된 한옥을 떠나지 못하며 남들에게 말 못한 외로움에 떨면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가구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의 외면에서 비롯된다는 설정이다.

‘검사 프린세스’ SBS 제공.
‘검사 프린세스’ SBS 제공.
검사 프린세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엘리트가 된 마혜리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의 명품을 자유롭게 쓸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위해서는 검사 월급으로는 어림없다는 걸 파악하고 아버지에게 의지한다. 아니 아예 그녀에겐 일찌기 자신의 희망이나, 앞날에 대한 비젼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마치 먹을 것을 주며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아버지에 의해 사육되어 오늘날 검사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수목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여전히 가족과 부모와의 관계에서 고뇌를 겪는다. 그리고 애초에 송은조란 인물의 설정이 일그러지고 강팍한 아이처럼 그려지듯이, 세 드라마는 엄마, 아빠의 사랑, 그것도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아니 여주인공들 뿐이 아니다. 억울하게 사형수의 누명을 뒤집어 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10여년을 달려온 검사 프린세스의 서인후 변호사, 구대성이 갈곳 몰라 헤매이던 자신을 보듬어준 은인이었음에도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있다고 하자 거침없이 나쁜 남자로 변신하는 신데렐라 언니의 홍기훈 역시 여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엄마가 쫓아다니면서 여자를 사귀라 마라하는 개인의 취향의 완벽한 전진호도 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참 사회 생활을 하고, 거기서 인간 관계를 맺고 펼쳐나가야 할 젊은이들인데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가족의 주위를 맴맴 돈다.이건 뭐 헬리콥터 부모가 아니라, 헬리콥터 아이들이 되는 셈이랄까.

이는 우선 우리나라 드라마가 철저히 수요자 우선의 법칙에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다음 날이 밝기가 무섭게, 아니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 포털의 게시판에서부터, 드라마의 소비자들은 드라마의 세세한 내용까지 털어대며 설왕설래하고, 이는 다음날 시청률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상품으로서의 드라마의 광고 수주로 이어지고...

얼마전 통계적으로도 나왔지만,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대부분 우리나라 저녁시간 드라마의 시청권은 여자들에게 있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다. 추노나, 아이리스처럼 두드러지는 작품이 아니고서는 남자들이 리모컨을 쟁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그 시간에 어쩌면 남자들은 아직도 귀가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는 뻔하다 하면서도 똑같은 설정이 반복되는 것이고,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등장하기 힘든 것이다.

세 드라마 모두 주인공들이 가족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똘똘 뭉친 것은 현실의 20대들이 정말로 그리도 가족에 애착을 느끼고, 가족의 문제에 발벗고 나서는 지의 리얼리티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소비하는 주부들이 중심이 되는 시청자층의 위로를 위한 것인 것이다.

엄마들은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자녀들을 기다리며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이들이 가족 때문에 고뇌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모습을 보며 위안과 위로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것이 위안과 위로 만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주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영된 sbs 스페셜 3부 자식, 가시방석 위의 캥거루는,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자식들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울타리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맴맴 도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88만원 세대 등 대학을 나와도 자신의 자립적 기반을 세우지 못하는 젊은 층이 많아지고,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하고 집을 가지고 보란 듯이 사는 것이 어려워 지면서 더더욱 부모 언저리에서 맴도는 자녀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목 드라마의 아직도 부모와의 관계에 얽혀 허우적거리는 젊은이들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또 다른 페르소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룽잉타이는 <눈으로 하는 작별>에서 가족이란, 세상을 살아가며 점점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아이가 자라서 성장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선다는 것이다. 더 이상 부모의 도움이 없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 수록, 스스로 선다는 것이 모험이 되고, 위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고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개성의 탄생>에서는 우리가 당연히 그러리라고 믿었던 사실을 전복시킨다.

우리는 늘 좋은 부모가 있어야 좋은 아이가 키워진다고 믿는데, 통계적으로 보면, 그게 그렇지 않단다. 실제 아이들의 성장에서 부모라는 인자가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즉, 신데렐라의 은조도, 개인의 취향의 개인이도, 물론 그들의 아픔이 공감도 가고, 안스럽기도 하지만, 그것이 성인이 될 그들을 지배할 만큼 필연적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결정적 요인이라면 역사 이래 대다수의 인간이 뒤틀리고 일그러져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 드라마들은 그들이 어린 시절 받은 고통에 천착하고, 그들의 잘 키워낼 가정에, 그 관계에 연연하고 있다.

그들은 21 세기의 젊은이들이지만 전혀 쿨하지도 않고, 모던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없애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래야만 젊은 세대의 삶이 온전히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의지의 동물이다. 자신의 억압적인 환경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묘한 동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자꾸 동물이라 하지 않고, 인간이라 따로 분류시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을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퇴행적으로 지내왔고, 거기에 억눌려 왔지만, 뒤늦게라도 성장통을 겪는 수목 드라마의 청춘들에게 박수를 보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성장통을 넘어 스스로 우뚝 선 한 성인으로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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